요즘 부쩍 부모님이 아프시다. 몸이 아프셨다면 약이라도 써 볼 텐데, 부모님은 마음이 아프시다. 나는 이것을 질병이라 부른다. 이 질병의 기원은 주택담보대출에서 시작되었다. 하루에 14시간 이상 노동하시는 부모님은 '남들보다'는 아니지만 '남들만큼'은 열심히 살았으나, 오히려 살기는 더 힘들어지셨다고 말씀하신다. 그들은 지금 살고 있는 경기 남양주의 아파트 주택담보 대출이자 상환일이 돌아오면 부쩍 더 말씀이 없어지신다. 아파트는 4년 전 그들이 전 재산을 투자해 마련한 당신들의 최초의 집이었다. 이후 누나와 나는 밥상에 마주 앉아 늘 고민하지만 아직도 부모님의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잘 보이지 않는다. 늘상 내리는 결론은 당분간 개선의 여지가 없다라는 것이다. 더 불행한 것은 내가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노동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마음 편히 방에 틀어박혀 글만 쓰고 있는 것도 아니다. 내게는 외면하고 싶어도 외면할 수 없는 너무 큰 현실이 있다.
평등이란 단어로 이 문단을 시작하고 싶다. 평등은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대한 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동등한 방식으로 모든 사람을 대한다는 말이 모든 사람이 똑같은 사람인 양 대한다는 뜻이 아니다. 평등의 참뜻은 그 보다 각 개인이 처한 독특한 상황에 공평하게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이다. 바른 평등은 사람의 특수성을 중시하는 만큼 저 사람의 특수성도 중시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 세계는 평등하지 않다.
총선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각 정당은 유권자들이 생각할 틈도 없이 새로운 정책들을 쏟아내는 중이다. 빈곤층의 삶에 대해 단순한 걱정만 있을 뿐인,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 아무런 고민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빈곤층 노동자들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한다. 그 중에는 생존 투쟁을 '임금인상을 위한 이기적인 집단 행위'라고 생각하던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모든 공약에는 전 국민이 평등하게 살자는 취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볕이 들지 않은 곳은 어물정 넘어가고 있는 것 같다. 너무 거시적 문제에만 몰두하고 있다. 거시적 문제에 몰두한다는 것은 작은 곳은 잘 모른다는 것이다. 대부분 불만이 나올 만한 이슈들은 새 정책 발표로 무마하고, 그 아래 포진된 진짜 문제들은 큰 그림으로 덮는 일이 허다하다. 이게 정녕 평등인가?
억지 논리를 만들어보면, 우리는 유권자가 아니다. 사실상 우리가 표를 행사해서 실질적으로 변화하는 것은 지역구를 돌아다니는 국회의원이 변하는 것뿐이다. 정작 그가 내세운 공약은 반도 실천되지 않는다. 선거철인 요즘, 나는 그들의 유세가 너무 희망차 오히려 절망스럽다. 이것이 내게는 일종의 광고전략 더 이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들의 수법은 정책을 예쁜말로 브랜드화 시키고, 상품 광고기간이 끝나면 거기서 끝이다. 최근에야 저소득층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크게 하락한 것이 이슈화 되고 있다. 이제야 이슈가 됐다는게 말이 되는가. 그런데 정부는 우리가 아무리 SOS를 외쳐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뒤늦게 정부는 소득이 줄어들고 경제활동에서 소외되면서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구조적 악순환을 끊겠다는 말을 자신있게 했다. 그런데 정부에서 내 놓는 빈곤층 정책을 체감할 수가 없다. 무의미하게 만들어내고 있는 고용 정책도 빈곤층이 중산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주변을 둘러보면 편안히 잘 사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현 정부의 빈곤층 정책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보려는 심산이 아니었나 싶다. 그야말로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그런데 자신들의 정책이면 다 괜찮아 진단다. 정말 콩가루와 감초가루를 섞은 환을 만병통치약이라고 파는 약장수와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총선이 한 달 남았다. 그동안 잃은 게 많다. 그리고 더 잃을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한 번만 더 믿어보고 싶다.
천정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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