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살면서 10%의 부족함을 느꼈는데, 오늘 100%를 다 채웠습니다.”
태어난 곳은 전북 전주시, 고향은 전남 순천시. 한국에서 평생을 지냈고 누구보다 이 나라를 사랑하는 한국인으로 살아 온 인요한(53) 박사가 21일 법적으로 한국인이 됐다.
법무부는 인 박사에게 특별귀화 허가를 내리기로 하고 이날 경기 과천 법무부 청사에서 대한민국 국적증서를 수여했다. 특별귀화는 본인 또는 배우자, 직계존비속이 정부로부터 훈·포장을 받는 등 특별한 공로를 인정받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다. ‘외국국적 불행사 서약’만 하면 한국 국적을 취득하더라도 외국 시민권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
연세대 의대 출신으로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으로 재직 중인 그는 가족사만 봐도 미국 이름 ‘존 린튼’보다 ‘인요한’이 더 친숙할 수 밖에 없다. 그는 1895년 미국 남장로교에서 한국으로 파송된 유진 벨(한국명 배유지)의 외증손이고, 조부 윌리엄 린튼(한국명 인돈)씨는 일제 강점기 때 신사참배 거부 등 항일운동을 전개했고 지금의 한남대를 설립했다. 아버지 휴 린튼(한국명 인휴)씨는 한국전쟁 참전 뒤 순천에 결핵진료소를 세워 의료 활동을 펼치던 중 1984년 교통사고로 숨졌다.
4대에 걸쳐 한국 사랑을 이어 온 인 박사는 다른 공로보다 한국형 구급차를 개발한 게 자랑스럽다고 한다. 그는 “너무 내 자랑을 하는 것 같아 그렇지만 우리나라에 내가 개발한 구급차 5,000여대가 다니고 있다”며 “아버지께서 제대로 된 구급차가 없어 호송 중 세상을 떠나면서 한국형 구급차를 개발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했다.
그는 한국을 넘어 한민족에 대한 사랑을 펼치고 있다. 북한에 의료장비를 무상지원하고 약품을 제공하는 등 북한 결핵퇴치사업을 하고 있다.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에 이어 2005년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다. 덕분에 인 박사는 선대의 업적이 아니라 본인의 공로로 특별귀화 허가를 받게 된 첫 한국인이 됐다.
권지윤기자 legend816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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