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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옥 등단 5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출신 작가와 축하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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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옥 등단 5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출신 작가와 축하모임

입력
2012.03.21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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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분이라고 봄바람 시샘도 잠깐 눅어진 20일 오후 서울 대학로 갤러리카페 '모차르트'. 소설가 황충상(63) 동화작가 노경실(54) 소설가 김애현(47) 소설도 쓰고 시도 짓는 김도언(40)씨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들어섰다. 모두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해 빼어난 활약을 펼치는 작가들이다. 소설가 김승옥(71)씨의 등단 50주년을 축하하는 모임이었다. 1962년 스물한 살에 등단해 '무진기행' '건(乾)' '역사(力士)' '차나 한잔' '서울 1964년 겨울' 등 한국문학사에 전설처럼 기록된 작품들을 쏟아냈던 김씨 역시 한국일보 신춘문예 출신이다. 이들의 직계 선배다.

좀 늦겠다는 선배를 기다리며 후배들은 그와의 인연을 화제로 올렸다. 노씨는 30년 전, 그러니까 김승옥씨가 하나님을 만나는 영적 체험을 통해 기독교에 귀의했던 무렵 한 교회의 문화예술인선교회에서 3년 가량 함께 했던 경험을 말했다. "금요일마다 모여 철야 예배를 드렸는데, 그때마다 선생님은 무릎 꿇고 울면서 감사와 회개의 기도를 드리곤 했다. 당시 20대로 선교회 막내였던 나는 문단의 전설적 작가가 이토록 간절히 하나님을 영접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한편 선생님이 앞으로 계속 작품을 쓸 수 있을까 걱정도 됐다. 도스토예프스키가 그랬잖아. 회의의 터널 끝에 그리스도가 있다고. 빛을 본 사람에겐 어둠 속에서 치열하게 투쟁하는 창작의 과정이 헛된 것으로 보이기 쉽다."

2006년 등단해 작가 연차로는 막내인 김애현씨가 말을 받았다. "이제 작가보다는 신앙인에 가깝다고 하지만, 내게 선생님은 여전히 '문학'이고 '소설'이다. 김승옥 하면 젊은 날의 흑백사진과 '무진기행'의 문장들이 절로 떠오른다." 김씨는 얼마 전 안개를 소재로 단편을 쓰다가 김승옥 소설의 높은 경지를 새삼 실감했다고 한다. "새벽에 밀려오는, 밀가루 반죽 같은 질감의 안개를 표현하려 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문득 무진의 안개가 떠올랐다. 그 수준에 못 미칠 거라면 차라리 묘사를 하지 말자 싶어 그 부분을 들어냈다."

김도언씨에게 김승옥씨는 1999년 그를 등단시킨 신춘문예 심사위원이었으며 그해 4월 소설가 김숨씨와의 결혼식 때 주례를 서준 은사다. "선생님이 처음으로 문단 후배의 주례를 서는 자리였다. 그때 우리 부부에게 해주셨던 말씀 중 기억 남는 것은 '작가로 살기 위해서는 전지(田地)와 통장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김승옥씨와 오래 교유해왔고 23일 서울 연건동 함춘회관에서 열리는 '김승옥 등단 50주년 문학낭독회'를 준비 중인 황충상씨는 "김승옥 소설은 당대 젊은이들의 의식 세계를 가장 정확하게, 그것도 번역투 문장이 성행하던 당시 가장 자유자재한 우리말로 표현했다"며 "내 또래 작가는 물론이고 지금의 신예 작가들도 문장 공부하면서 꼭 읽어야 할 작가"라고 말했다.

김승옥씨가 도착했다. 10년째 뇌졸중 후유증을 앓는 몸으로 쇄도하는 인터뷰에 응하고 다가온 문학낭독회까지 챙기는 게 고됐는지 감기까지 들었지만 그는 후배들 앞에서 환한 웃음을 보였다. 대선배를 처음 만나는 김애현씨는 문청 시절 빨간 줄을 쳐가며 거듭해서 읽었던 김승옥 소설 선집을 꺼내 그 누렇게 바랜 속지에 서명을 받았다. 노씨는 17세기 영국 청교도 신학자 존 오웬의 책을 선물했다.

황씨가 주간으로 있는 문학나무에서 갓 찍어낸 노란 표지의 기념 문집을 받아 든 김승옥씨는 "마음에 든다"고 흡족해 했다. 김씨의 단편 '서울 1964년 겨울' '건'과 자전적 에세이, 그리고 소설가 김채원 이채형 김도언, 평론가 정과리 서연주씨의 감상문과 비평을 담은 책이다. 꼼꼼히 책을 살피며 몇 가지 편집상 제안을 하고 수록된 옛 사진들에 웃음 짓던 김씨는 이내 조심조심 손을 놀려 후배들에게 일일이 서명본을 선물했다.

후배들과의 대화는 짧은 단어 위주의 말과 필담으로 이어졌다. 김씨는 그들과의 만남이 편안했는지 내내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이건 (평론가)김현만 알던 얘기"라며 등단한 지 10년도 안돼 영화판으로 건너간 이유도 털어놓았다. 첫 작품집 출간을 둘러싸고 출판사와 빚었던 금전적 갈등 때문이었단다. 서울대 동기로 평생지기였던 소설가 이청준씨와의 문청 시절을 한참 회고한 뒤 "먼저 작가가 되고도 나는 원고가 많지 않았는데, 이청준은 늦게 돼서는 소설가로 롱런했다"고 말을 맺었다.

후배들이 덕담을 청하자 김씨는 연신 허허 웃으며 그 청을 물리쳤다. 그것이 일찍이 김지하 시인이 찬탄한 '한없는 겸손함' 때문인지, 온전히 불사르지 못한 문학인생에 대한 회한 때문인지 가늠할 길 없지만, 그의 또렷한 정신과 건강한 모습만으로도 왠지 고마운 오후였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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