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탄이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전쟁터를 제집처럼 드나든다. 서른 살이었던 새내기 PD시절 찾아간 동티모르를 시작으로 마흔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 아프가니스탄, 팔레스타인, 이라크 등 30여개 분쟁 국가의 국경을 넘나들었다. 이런 생활이 자그마치 12년이다. '동티모르 푸른천사', '파병 100일간의 기록, '자이툰 부대', '이슬람 딸들' 등의 다큐멘터리가 대표작이다. 언제부터 이름 앞에는 '분쟁전문PD'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최근 에세이집 <사람이, 아프다> 을 낸 김영미(42)씨 얘기다. 사람이,>
미국 시애틀에 거주하는 김씨는 21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 '분쟁전문PD'는 세상 사람들이 붙여준 이름에 불과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사람이 있는 곳에 가서 그들의 이야기를 화면에 담는 다큐멘터리 피디일 뿐"자신을 정의했다. "분쟁지역 속으로 깊숙이 들어간 것은 '전쟁'취재가 목적이 아니라'사람'을 만나기 위함이었어요. 그런 공포의 현장에도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살고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죠."
그는 전쟁을 커튼에 비유했다. "전쟁은 정치, 경제, 외교안보 같은 어렵고 추상적인 커튼으로 겹겹이 가려져 있어요. 그걸 걷어내야 본질이 보입니다. 바로 사람이죠. 총알이 날아다니는 전쟁터에도 아침에 일어나면 아침밥을 준비하는 엄마가 있고, 학교에 가고 싶은 아이들이 있다는 걸 알아야 전쟁이라는 실체에 접근할 수가 있어요."
그의 설명처럼 책에는 일상적이고 평범한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생생한 이야기가 있는 곳이라면 민박집, 난민촌, 학교를 가리지 않고 찾아가 그들과 어울린 기록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누군가의 일상을 취재하기 위해 같이 사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어요. 현지 여성들과 함께 '먹고 자는 하는 취재'를 했어요. 자연스럽게 경계심을 풀더군요. 지금은 현지인이 아니면 절대 접할 수 없는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가 동거동락하는 부류는 대부분 여성과 아이들이다. 그동안 만든 수많은 다큐멘터리에서 이들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왜 일까. "분쟁지역에선 남성들이 정치적인 발언을 할 때가 많아요. 사회의 최대 약자인 여성과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그 사회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서게 됩니다."간결했지만 명료한 답변이었다.
자신이 아들을 키우는 엄마라는 점도 분쟁전문PD 일에 한 몫 한다고 했다."아이를 키우고 있기에 아프간과 이라크의 수많은 여성들이 삶을 이해할 수 있었어요. 다큐 피디로 일하는 한 변하지 않을 것 같아요."
만나는 사람마다 가족이 되면서 다른 언론인이 쉽게 취재하지 못하는 영역도 마주할 수 있었다. 부르카를 벗어던진 아프간 첫 여성 앵커 마리암을 만났고, 외부인의 접근이 어려운 난민촌을 취재했으며, 이라크 저항세력의 본거지를 화면에 담는 결실을 이끌어 냈다.
그의 다음 작품이 궁금해졌다. "오지와 분쟁지역을 다니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게 가난과 무지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아이들이었어요. 아이들이 먹고 사는 문제를 자립적으로 해결하고 스스로 미래를 만들어가는데 도움을 주고 싶어요. 일종의 '방법론'을 제시할 공정무역 다큐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손효숙기자 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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