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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의 詩로 여는 아침] 훔친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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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의 詩로 여는 아침] 훔친 사과

입력
2012.03.21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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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아, 파, 아파가 아빠로 들려

아버지 몸져누운 방에서

새파랗게 날 선 칼을 든다.

투명한 과일이 열린다.

아버지 눈가의 과일을 훔쳐

손안에 쥐고 서걱서걱

멋없이 깎아

아버지 모르게 먹는다.

베어문 사과,

시력을 잃은 눈동자가 씹힌다.

● 그렇군요. 이브가 훔친 열매는 사과가 아니라 신의 눈동자였습니다. 뱀의 꼬임에 빠져 이브가 열매만 안 땄더라면 하느님 아버지의 눈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밝고 밝으셨겠네요. 그랬더라면 그 좋은 눈으로 늙어가는 사람의 주름도 보시고 배고픈 아이의 입술도 보시고 학대 받는 이의 슬픈 눈빛도 보셨을 텐데. 그러면 아무도 안 늙고 안 굶고 안 죽어갔을 텐데. 이브와 아담이 훔쳐온 사과를 다 먹어 치워 하느님은 아무것도 못 보시고, 세상은 계속 아프고 배고프고 슬프게 죽어가나 봐요. 하지만 그거 아세요? 안 보이면 잘 들린다는 것. 그래서 세상의 모든 종교가 신에게 끊임없이 기도하라고 권유하나 봅니다. 안 보이시는 하느님, 하지만 잘 들어주시는 하느님,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세요. 제가 알고 있는 가장 멋진 기도는…… 그건 다음 시에서 말씀 드리지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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