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G중학교 교무부장인 A 교사는 최근 죄책감에 시달린다. 새 학기 2학년 한 학급의 '담임B'로 지정됐지만, 개학 후 상담은커녕 반 아이들 얼굴 한번 따로 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업무, 교과교실제 운영, 학교 정보공시 업무, 월중행사관리, 토요프로그램 관리 등 교무부장에게 주어진 일만도 산더미라 방도가 없었다.
이 학교 복수담임 8명 중 5명이 A 교사처럼 굵직한 행정을 맡은 보직교사다. A 교사는 "교장, 교감, 임신한 교사를 빼니 복수담임 할 사람이 없어 2월말 갑자기 지정됐다"며 "우선 거친 아이들을 담임B가 맡아 지도하기로 했는데, 사실 누가 상담대상인지도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새 학기에 시급히 도입된 복수담임제가 겉돌고 있다. 지난달 6일 정부가 학교폭력근절 종합대책의 하나로 중학교 2학년부터 담임을 두 사람씩 두도록 했지만 실효는 적고, 두 담임 간 갈등만 낳고 있다.
사실 이 같은 실패는 예고된 것이라는 지적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달 5가지 복수담임 역할 예시안을 제시했지만 세부지침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1달씩 번갈아 일한다'는 다섯 번째 안은 교사들의 비웃음만 사고 있다.
서울 S중 K 교사는 "기본적으로 학생 우유 값 걷기나 출석 부르기는 담임A가 하고 상담 및 청소지도 등은 담임B가 한다는 식으로 업무분담을 한다면, 경계가 불명확한 일이 생길 때마다 두 교사가 눈치를 보지 않겠냐"며 "그러니 매달 돌아가며 한다는 것은 더 어불성설"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그냥 본 담임이 모든 일을 하되, 담임B는 일부 문제학생이 등장할 때만 나선다는 2안을 택하는 학교가 다수"라고 말했다.
또 다른 문제는 이렇게 상당수 학교에서 담임B의 역할이 제한적인데 월 11만원의 담임수당은 담임A와 똑같아, 본래 담임교사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이 때문에 갈등이 유발된다는 것. 경기 한 중학교 K 교사는 "일부 교사 중에는 오히려 담임B를 맡아서 이름만 올려두고 수당이나 승진을 위한 담임점수를 받게 돼 좋다는 사람도 있다"며 "왜 나만 고생이냐고 항의하는 담임A와 말다툼도 난다"고 말했다. 담임B 몫의 수당으로 약 750억 예산이 확보됐지만 효과는 없이 낭비되는 셈이다.
교사 부족으로 편법도 횡행하고 있다. 외근이 잦은 순회교사를 복수담임으로 지정하거나, 형식적으로 명단만 올려두는 경우다. 경기 지역 중학교 K 교사는 "사람이 없어 우리학교와 인근 학교를 오가며 한문을 가르치는 순회교사가 2학년 담임B를 맡았다"며 "일주일 5일 중 이틀은 옆 학교로 출근해 생활지도 분담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서울 M초등학교 6학년 담임 L 교사는 "학교에서 교육청에 복수담임 지정현황을 올렸지만, 정작 6학년 담임들은 자기 반 복수담임이 누군지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손충모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변인은 "단기간에 성과를 보이려고 조급하게 밀어붙인 결과"라며 "수당으로 1회에 소비되는 수백억 예산을 신규교사 채용이나 교원 업무 재편성에 사용하는 게 나을 뻔 했다"고 지적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역시 3월 중 열릴 2012년도 단체교섭 때 복수담임제 정착 및 개선방안을 요구한다는 계획이다. 김동석 교총 대변인은 "도입 취지는 이해하나 업무분담이 모호해 혼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별도 보안책 및 생활지도 강화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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