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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이경숙을 무너뜨린 한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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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이경숙을 무너뜨린 한영실

입력
2012.03.20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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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주인은 누구일까. 누가 대학을 끌고 가야 하는가. 설립자(또는 가족) 일까, 학교법인(이사장을 포함한 이사진)일까, 아니면 총장 일까. 그도 아니면 교수와 직원, 학생을 위시한 학교 구성원일까.

대학은 기본적으로 '공공 기제'로 분류되기 때문에 국가 소유라는 확대된 정의를 내놓는 학자도 있지만, 나는 총장의 힘을 믿는 쪽이다. 기업으로 치면 총수 같은 역할이 총장한테 주어져 있다는 판단이다.

그런데 흔들려선 안 될 총장의 리더십이 크게 훼손되는 양태들이 곳곳에서 목도되고 있다. 소수 인원만 상아탑을 구경할 수 있었던 시절 고등(高等)교육기관(대학)이 이젠 그 흔한 보편적 교육기관이 되면서 총장의 권위와 역할 또한 자연스레 변화한 측면이 있긴 해도, 이 정도까지 추락할 것이라곤 예상치 못했다.

작금의 '총장 수난시대'는 어쩌면 예고된 측면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현 정부 출범 이후 특히 심한 편이라고 여겨진다. 대학을 실적 지상주의의 기업처럼 평가해 정부 예산을 나눠주는 비교육적 행태가 두드러지고, 툭하면 감사 따위의 채찍을 무기로 대학 자율화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통에 총장들은 설 땅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 검증도 안 된 설익은 정책을 내놓고 대학한테는 따라오라는 식의 요구도 다반사이고, 이를 관철시키기위해 대통령과 교육부 장관은 총장들을 들들 볶는다.

이러니 장단을 맞춰야 하는 대학은 또 얼마나 피곤하겠는가. 이럴때 중심을 잡고 총장에게 힘을 실어주고 격려해줘야 할 곳이 법인이고 이사장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총장들을 길들이려는 곳이 부지기수다.

최근 숙명여대 사태가 함축돼 있다. 학교에 들어온 기부금이나 발전기금을 법인 통장에 집어넣은 것 부터가 잘못이었다. 법인은 "정부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불법은 아니지 않느냐"고 항변했지만, 이건 핑계다. 학교 돈을 왜 법인이 만지작 거리나. 대학 평가에서 좋은 결과를 얻어낼 요량이었다면 법인의 빈 곳간을 채워넣을 수 있는 방도를 먼저 궁리했어야 옳았다. 지원할 돈이 없다면서 기부금을 가로챈 뒤 이걸 그럴듯하게 세탁해 학교에 쌈짓돈 처럼 나눠준 것은 명문 여대 법인의 행위 치고는 치졸하다. 문제점을 지적하는 한영실 총장을 향해 "재선 욕심 때문에 반대파 법인 이사들을 바꿀려고 의도적으로 내용을 흘렸다"고 화살 돌리는 것은 적반하장이다. 한 총장과 전임 이경숙 총장과의 갈등설 역시 법인의 도덕성에 하자가 없다는 전제에서나 가능한 얘기다.

숙명여대 사례는 법인이 총장을 시쳇말로 쥐고 흔들려다가 일어난 불상사다. 총장을 도와 학교발전을 도모해야 하는 사립학교 법인의 가장 기본적인 존재 이유 조차 망각한 코미디다. 교육부가 이용태 이사장에 대해 임원취임승인 취소를 통보한 이유를 곱씹어 봐야 할 것이다.

이사장이 해임되는 것으로 숙명여대 파문은 수습 국면을 맞겠지만, 시사점은 적지 않다. 범위를 넓히자면 법인과 총장, 압축하자면 이사장과 총장 간의 관계를 성찰하는 계기가 됐다고 본다. 14년이나 숙명여대를 이끈 이전 총장이 학교 운영에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이사진 8명 중 6명이 이 전 총장 시절 임명됐던 사람들이라는 사실만 보더라도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짐작이 간다.

밖으로 돌면서 기금을 모으고, 교수들한테는 수준 높은 연구와 강의를 독려하면서 크고 작은 일들을 벌인 한 총장은 법인에 자주 발목이 잡혔다. 한 총장은 기부금을 법인 계좌로 이체해선 안 된다고 요구해 관철시켰으나, 이사진이 이걸 문제 삼아 대반격에 나섰다고 한다. 교직원들의 복종 의무와 집단행동 금지 의무라는, 흡사 군대를 방불케하는 운영규칙을 제정한 것이다. 이쯤 되면 이후 학교 내부의 이전투구는 안 봐도 뻔하다.

교육부가 교통정리를 잘 했다고 판단한다. 잘못된 관행을 아무렇지도 않게 답습해온 법인에 경종을 울린 측면이 강하다. 이런 대학이 어디 숙명여대 뿐이겠는가.'제2의 한영실'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김진각 여론독자부장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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