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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일 칼럼] 인문학이 철학과 비슷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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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일 칼럼] 인문학이 철학과 비슷하나요?

입력
2012.03.20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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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등 교사들을 위한 인문학 연수 강의에 나갈 때마다 나는 학교 선생님들이 인문학이란 것에 대해 물어보고 싶은 것이 뭐냐고 먼저 물어보는 버릇을 갖고 있다. 그들이 무엇을 가장 궁금해 하는지가 나로선 가장 궁금해서다. 그래서 질문을 수집한다. 선생님들이 던지는 질문들만으로도 책 몇 권은 써야 할 만큼의 화두가 모아지고 생각할 거리들이 쌓인다. 큰 소득이다. 정말 무슨 책이라도 써야겠다는 소리가 아니라 내가 미처 몰랐던 질문들,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던 문제들을 그들의 질문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몰랐던 질문들, 더 정확히 말하면 선생님들의 입에서 튀어나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질문들은 가령 이런 것이다. "인문학은 인간의 조건을 탐구하는 철학과 비슷한 학문인가?", "인문학이 삶에 주는 긍정적인 영향이 뭐냐?", "아이들에게 어떻게 인문학을 들고 다가가야 할지 막막하다. 인문학 공부를 시작하자면 어떤 방법이 좋은가?"…

이런 질문들은 솔직하고 용감하다. 꾸미는 구석이 없고 '무식이 드러날까봐' 망설이거나 겁내는 기미도 없다. 솔직함과 용기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은총 다음으로 감사해야 할 큰 덕목의 범주에 들어간다. 그래서 나는 그런 질문들을 서슴없이 던져준 선생님들에게 늘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고, 생각날 때마다 그 질문지들을 챙겨 읽어보곤 한다. 무엇보다 나는 그 질문들이 나를 비롯한 대학의 수많은 인문학 교수들, 인문학 강의를 한답시고 천지를 ?아 다니는 인문학 대가들, 자칭 타칭의 모든 '인문쟁이'들을 한없는 부끄러움의 순간 앞에 사정없이 노출시킨다는 사실을 고맙게 생각한다.

무슨 부끄러움? 초중등 교사들은 모두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다. 대학을 나온다 해서 아무나 교사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교대나 대학원을 나와야 하고 일반 대학의 경우는 (교대도 마찬가지지만) 교사 자격시험을 거쳐야 '선생님'이 된다. 옛날의 사대 시절과는 직접 비교하기 어려울지 몰라도 '공부'를 잘 해야 교사가 될 수 있다. 그런데 그 공부 잘 했던 사람들이 도대체 어떤 교육을 받고 무엇을 공부했기에 "인문학은 철학과 비슷한 학문이냐?"같은 질문들을 던질 수 있는 것일까. 대학 교양교육은 그들에게 무엇을 가르쳤을까. 교사들을 탓하자는 것이 아니다. 부끄러워해야 할 쪽은 대학 교육 그 자체이고 대학에서 인문학 교육이니 교양교육이니 하는 것들을 담당해온 인문학 교수들 그 자신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인문학은 막연하다, 뜬구름 잡기다, 어렵다고 토로하는 것도 인문학자들로서는 부끄러워하고 깊이 생각하고 반성해야 할 문제다. 학문으로서의 인문학은 미세한 전공 갈래로 들어갈수록 까다롭고 난삽한 것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인문학은 어려운 것이 아니고 어려워야 할 이유도 없다.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고 소통하고 칡뿌리 얽히듯 얽혀 이런저런 관계를 만들며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인문학은 막연한 것도, 뜬구름 잡기도 아니다.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막막한 것도, 접근하기 어려울 만큼 근엄한 것도, 세상살이와 단절해야만 가능한 혼자만의 구도행도 아니다.

인문학은 대학에만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시장에도, 공장에도, 동네 구멍가게에도, 회사 사무실에도 있어야 한다. 인문학은 모든 곳에 있어야 하고 만인의 것이어야 한다. 이 바쁜 선거의 계절에 웬 인문학 얘기? 인문학의 중요한 사회적 효용의 하나는 그것이 민주주의의 토대를 다진다는 것이다. 인문학이 실패하는 곳에서는 정치가 실패하고 경제가 실패하고 사업이 실패한다. 그런 곳에서는 시장전체주의가 사회를 거꾸로 세우고 사람을 물건 만들고 팔 것과 팔아먹을 수 없는 것의 구분을 사라지게 한다. 수단과 목적의 자리가 뒤바뀌고 어떤 것이 중요한 사회적 가치인가를 따지는 토론도 불가능해진다. 인문학자를 국회의원으로 뽑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나는 인문학 같은 것 잘 모른다"고 공공연히 말하거나 행동하는 사람에게는 표를 줄 필요가 없다.

도정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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