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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아니"라고 말할 사람

입력
2012.03.20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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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막고, 눈을 가렸다. 사람들은 거짓을 말하거나 보고도 못 본 척했다. 서슬 퍼런 독재권력이 무서워 감히"아니오"라고 말하지 못해 자괴감에 시달리던 시절. 그 세태를 한탄하듯 청년 김민기는 침울한 저음으로 이렇게 노래했다. "눈 앞에 보이는 수많은 모습들/ 그 모두 진정이라 우겨 말하면/ 어느 누구 하나가 홀로 일어나/ 아니라고 말할 사람 어디 있겠소"

1971년 그의 데뷔 앨범 타이틀 곡인 였다. 이듬해 그는 서울대 신입생 환영회에서 이 노래를 부르다 경찰에 연행되고, 음반은 모두 수거됐다. 친구의 어이없고, 억울한 죽음 앞에서조차 "아니야'라고 소리치지 못한 자신의 부끄러움, 거짓이 진실인양 행세하고 진실이 무참히 짓밟히는 세상에 대한 풍자와 저항이었으리라.

어느 증권회사와 한 보수신문이 한때 광고 카피로 이용하기도 한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라고 하는 것은 용기이다. 그런 용기라고 모두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사사로운 이익이나 아부를 위해 참을 보고도"아니"라고 소리치는 것은 기망(欺罔)이다. 양심과 진실을 향한 용기 만이 아름답고, 그런 용기를 가진 사람들로 세상은 발전한다. 당파에서 벗어나 죽음을 각오한 용기로 "아니오"라고 했다면, 임진왜란 앞에서 조선이 그렇게 무참히 유린당하지 만은 않았을 것이다.

를 노래한지 40년이 지났지만, 세상 풍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사람들은 거짓을 진실인양 우기고, 어느 누구 하나가 홀로 일어나 아니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독재가 사라진 자리에는 이념과 세대 갈등이 세운 높은 벽이 가로놓여 진실을 가리고 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으로 언로(言路)는 막힘 없이 뚫렸지만 나와 생각이 다르면 '적'이라는 무서운 동류의식과 이기적 진실에 집착하고 있다.

자신과 의견이 같지 않으면 '적'으로 몰아 부치는 세상에서 "아니"라고 말하기란 독재시절만큼이나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소외와 추방, 나아가 죽음까지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느 것이 진실과 상식이냐, 양심과 정의냐는 상관없다. 내가 속한 집단, 내가 속하고 싶은 집단의 사람들이 미국 쇠고기는 대부분 광우병에 걸렸다고 하면 그게 진실이고, 천안함 침몰사건은 미국의 짓이라고 하면 그렇게 믿고, 제주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려는 해군은 해적이라고 하면 서슴없이 그렇게 말한다.

정치인들은 물론 언론, 학자들까지도 사실이나 이성보다는 이념과 감정에 휘말려 이를 부추긴다. 진실이 아님을 뻔히 알면서도, 그것이'내 편'의 것(의견)이 아니면 입을 닫게 만들어 버린다. 이렇게 세상은 점점 더 '침묵의 나선이론'으로 빠져들고 있다. 그래서 이따금 그 침묵과 맹목적 동조를 깨고 "아니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지도 모른다.

정치적 계산에만 빠져 자기 부정까지 서슴지 않는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나 정동영 상임고문 보다는 당에서 왕따를 각오하고 한미FTA 폐기에 반대한 김진표 원내대표의 양심이 더 가치 있어 보인다. 노조원 모두 시청자들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파업에 뛰어들었지만, 고민 끝에 "이건 아니야"라며 드라마 의 마지막 회를 내보내 공영방송의 책임을 다한 김도훈 PD의 결단 역시 그렇다. 모두가 한류에 취해 마구잡이로 내달리고 있는 지금 "이러다가는 망한다"고 경종을 울린 박창식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장의 용기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아니오"가 용기인 것은 강요된 동류의식에서 벗어난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용기 있는 측근 한 명만 있었더라도 온갖 부패와 비리, 불법으로 얼룩지는 부끄럽고 한심한 임기 말을 맞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적을 향해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은 쉽다. 진정한 용기는 모두가 한편이 돼 우기는 집단 속에서의 "아니오"이다. 제19대 국회의원 후보 경선자도, 비례대표 후보들도 정해졌다. 하나같이 개인과 당보다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는 과감히"아니오"라고도 말하겠단다. 진짜 그렇게 하는지 어디 한번 지켜보자.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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