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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새마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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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새마을호

입력
2012.03.20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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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서 서울에 오려면 경북선 열차를 타고 김천에서 경부선으로 갈아타거나 영주에서 중앙선으로 갈아탔다. 장시간 완행 열차를 타야 하는 지루함을 많이 덜어준 것이 어른들의 이야기 꽃이었다. 대용식으로 준비해 온 삶은 달걀이나 고구마 등을 스스럼없이 서로 나누며 시작된 살아가는 이야기는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끊이지 않았다. 차창 밖 풍경의 변화도 새로웠고, 역마다 서로 다른 특산물을 들고 기차로 몰려들었던 장사꾼들의 모습도 다채로웠다.

■ 집안 형편이 나아지면서 완행 대신 특급을 탔고, 이내 우등열차로 바뀌었다. 시간이 많이 줄고 치열한 자리잡기 경쟁을 벌이지 않게 된 반면 열차 안의 정겹던 풍경과는 작별이었다. 그나마 통일호(특급)나 무궁화호(우등)는 최소한 옆 사람과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여겨졌다. 열차 여행을 이성과 좋은 인연을 맺을 기회로 여긴 청춘 남녀가 드물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서야 비로소 탈 수 있게 된 새마을호는 이마저도 어려워졌다.

■ 열차 등급에 따른 공간적 변화가 아니라, 시간 축을 따라 진행된 세태 변화 때문이다. 흔히 아파트 생활이 이웃과의 소통을 끊어 고립과 단절을 부추긴다고 하지만, 단독주택에 살아도 이웃과의 대화는 좀처럼 되살아 나지 않는다. 가상 공간의 거짓 소통에는 열을 올리면서도 현실 공간에서는 낯선 사람과의 대화 자체를 피하는 게 대세가 된 지 오래다. 시속(時俗)이 이런 마당이라면 정치 지도자들에게 진정한 소통을 백날 요구해봐야 헛되게 마련이다.

■ 1969년 도입 이후 오랫동안 서민들의 부러움을 샀던 새마을호가 2015년쯤 완전히 사라질 모양이다. 호남선 KTX 추가 투입에 따른 노선 감축 등으로 자연스럽게 도태되리란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요절한 가객 김광석은 에서 '점점 더 멀어져 간다' '조금씩 잊혀져 간다'고 노래했다. 그가 서른 즈음에 자각했던 세월의 흐름과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오십 줄 한가운데서 문득 느낀다. 사라지는 것들에 꼬리로 매달린 기억에 실어.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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