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힘들다." '왕의 남자'를 만든 흥행 감독은 3분 가량 스마트폰을 들고 움직이며 영상을 찍고선 가쁜 숨을 내쉬었다. 말투엔 육체의 고단함이 배어났지만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고 호기심도 어려 있었다.
영화제 개막식 당일에 개막작 만들기. 19일 오후 개막한 제2회 올레스마트폰영화제의 도전은 무모하다까진 아니어도 무리하는 것 아니냐는 반문이 들만한 일이다. 몇 년 전 같으면 생각조차 하기 힘들었을 시도다.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고, 스마트폰을 활용한 영상물이 늘어나면서 가능하게 된 이벤트다.
이날 개막작은 전국의 스마트폰 이용자 100명이 18일 낮 12시부터 이날 낮 12시까지 영화제에 보낸 1분짜리 영상을 재편집한 것이다. 스마트폰 이용자들에게 제시된 주제는 '봄날의 입맞춤'. 개막작 제목이기도 하다. 영화제 집행위원장인 이준익 감독이 편집 등 제작을 총지휘하고, 심사위원인 봉만대 감독이 조감독으로 나섰다. 음악은 그룹 유앤미 블루 출신의 방준석 영화음악 감독이 맡았다. 영화제 사무국을 겸하고 있는 편집실은 말이 좋아 편집실이지, 노트북 4대와 데스크톱 컴퓨터가 전부였다. 개막작에 사용될 음악은 방 감독이 행사장 무대 한쪽 구석에서 별도로 녹음을 진행했다.
이날 오전 11시30분 개막식장인 서울 광화문 올레 스퀘어 2층 사무실에 꾸려진 간이 편집실에 나타난 이 감독은 여유를 부렸다. 개막작 도입부를 장식할 영상물을 몇 번이고 촬영하며 '전투 태세'를 가다듬었다. 봉 감독은 이미 도착한 영상물들을 훑어보며 '재료'들을 선별했다.
본격적인 작업은 오후 2시쯤 시작됐다. "휴우~." 본격적인 전투에 들어서기 전 이 감독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 감독은 봉 감독이 고른 영상물들을 하나하나 살펴 보며 "이 영상은 뒤로 가면 좋겠다. 이건 많이 쳐내서 사용해야겠네"라며 개막작의 얼개를 짜나갔다.
조각 영상물들은 전문가들의 손을 거치며 봄의 향기를 담은 한 편의 단편영화로 구색을 갖춰갔다. 축구게임을 하다 흥분하며 모니터에 입을 맞추는 남자의 무성 영상엔 봉 감독이 화장실 옆 빈 공간에서 새롭게 녹음한 음성을 입혔다. "으아아 박지성! 골~". 개막작에 삽입될 내레이션도 즉석에서 만들어졌다. 봉 감독이 글을 쓰고, 이 감독이 바로 녹음을 했다. 이 감독은 "실제 현장 연출보다 10배는 힘든 것 같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제 아무리 선수들을 모아놓아도 물리적 시간의 벽은 어쩔 수 없었다. 얼굴엔 초조와 긴장감이 짙어져 갔다. 1차 편집이 끝난 시간은 오후 4시 40분쯤. 다듬는 시간은 더 오래 걸렸다. 방 감독은 속이 탔는지 몇 차례 편집실을 찾았다가 빈손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결국 개막 행사 서두를 장식하기로 했던 당초 계획을 변경하게 됐다. 개막식 참석에 앞서 편집실을 찾은 배우 류덕환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이 감독에게 물었다. "정말 (계획대로) 하시는 거예요?"
오후 7시쯤 영상편집이 완료되고, USB로 배달된 음악들이 영상과 궁합을 맞추기 시작했다. 피를 말리는 작업 끝에 겨우 뼈와 살을 갖춘 개막작에 영혼이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이 드럼 곡은 어떠세요?"(방 감독), "좀 더 센 것 없어?"(이 감독), "그러면 기타 곡은 어떠신지…."(방 감독), "이게 낫다 OK!"(이 감독) 8시가 다 되어 10분짜리 개막작이 완성됐다. 방 감독은 조용히 혼잣말을 뱉었다. "이건 말도 안돼."
개막작은 외장형 하드디스크에 담겨 영화제 스태프에게 넘겨졌다. 이 감독이 무대에 올라 작품을 소개했다. "10분 전에 영화를 완성했습니다…." 개막작 상영이 이어 관객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짐을 덜어낸 이 감독은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보통 영화와 달리 미리 계산되지 않은 영상을 바로 편집해야 하니 당연히 어려웠다. 그래도 그 계산되지 않은 영상이 지닌 정서가 매력적이기도 하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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