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개"라고 시인 이육사는 '절정'에서 노래했다. LG아트센터에서 17~20일 공연된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는 이 시구를 떠오르게 하는 무대였다. 현대의 볼거리라면 왜 반드시 자본과 기술로 치장해야 하는지, 단 7명의 성악가에 90분으로 압축된 무대는, 유쾌하게 묻고 있었다. 최소한의 장치와 인원은 강철 무지개처럼 빛났다.
지난해 연극 '11 그리고 12'를 선보여 한국과 첫 대면했던 현대 연극의 거장 피터 브룩의 오페라는 그랬다. 그는 자신의 연출 경력은 연극이 아니라 오페라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을 새삼 상기시키기라도 하듯 텅 빈 공간을 판타지로 압도해 나갔다. '마술피리'는 2010년 파리에서 초연한 뒤 세계를 돌고 있는 무대다.
최소한의 장치만을 요구하는 오페라로는 지난해 국립오페라단이 공연한 풀랑의 '목소리'가 있었다. 이 경우 한 대의 피아노 반주에 가수 한 명만 등장하는 모노 오페라였다. 그 같은 장르적 특성을 뛰어넘는 이번 '마술피리'의 무대는 연극적 기호로 넘쳐 났다. 40여개의 장대가 배우들의 손에 들려져 나무, 숲, 방, 집 등으로 무한 변신했다. 물론 객석의 상상력이 받쳐 준 때문이다.
군데군데 모차르트의 걸작 중 일부 선율이 발췌돼 쓰이긴 했지만 절대 다수는 원본의 대사와 아리아, 레치타티브 등으로 채워졌다. 성악가들의 재치 있는 등장과 퇴장, 간결한 동선, 가사 내용과 긴밀하게 맞물리는 동작 등은 자칫 과장되기 십상인 오페라 무대를 보다 현실 속으로 바짝 끌어당기는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이른바 소극장 오페라가 대극장 오페라의 규모를 축약한 것으로 치부되곤 하는 우리 현실에서, 작은 오페라에는 독자적 미학 장치가 따라야 한다는 사실을 웅변했다.
독일어뿐인 원전과는 달리 불어를 가미해 가며 진행된 이 오페라는 모차르트가 추구했던 자유와 세계시민주의 운동, 프리메이슨 정신을 텍스트적으로 구현한 셈이다. "닥쳐" 같은 극히 단순한 대사는 한국어로도 말해 연극적 기동성을 보여주는가 하면, 등불을 켜는 대목에서는 연료 타는 냄새가 객석으로 밀려들기도 했다. 핵심을 존중한 가운데 텍스트를 변용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 소중한 경험을 객석은 공유했다.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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