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 과세를 더 이상 미루기 어렵다”는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의 발언(본보 20일자 1면)에도 불구, 정부는 여전히 신중한 입장이다. 그간 ‘과세 보류’의 주원인이었던 기독교계의 반발 정서를 극복하더라도 시행까지는 아직 넘을 산이 많기 때문이다. 박 장관 역시 이를 감안해 “단계적인 진행이 바람직하다”며 선을 그었다.
20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박 장관이 종교인 과세의 우선 대상으로 꼽은 것은 소득세다. 세계적으로 종교단체의 활동에 각종 세제 혜택을 주는 나라는 많지만, 성직자 개인의 소득에 대해 비과세 관행을 유지하는 나라는 한국이 거의 유일하기 때문이다. ‘소득 있는 곳에 과세 있다’는 공정과세 원칙에 비춰봐서도 종교인에 대한 소득세 과세는 필수적이라는 판단이다.
박 장관이 제시한 ‘단계적’ 과세안은 종교인이 내는 소득세에 각종 공제 항목을 어떻게 적용하느냐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가령 월급 외 기타 수당에는 세금을 내지 않는 직장인들처럼, 종교인도 성직 관련 활동비는 ‘비용’으로 처리해 비과세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박 장관은 “목회(종교) 활동에는 특별한 성격이 있기 때문에 경비 측면을 어느 정도 인정할 것이냐를 따져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비춰보면 원칙적으로 종교인의 소득을 과세 대상으로 삼되, 세 부담은 최대한 낮춰주는 방식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재정부 세제실 관계자는 “순차적으로 비과세 범위를 줄여나가는 것이 단계적 과세의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소득세 외 다른 세금은 일단 검토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현행법 상 비영리법인에 속하는 종교단체는 이미 법인세를 면제받고 있다. 때문에 종교인 과세를 실시하더라도 법인세가 과세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다만, 법인세나 상속ㆍ증여세법 등의 면세제외 요건(종교단체의 고유 목적이 아닌 수익이나 지출)을 지금보다 좀 더 엄격히 규정하는 식으로 비과세 범위를 줄이는 것은 검토될 여지가 있다.
종교인 과세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세금을 매길 대상을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하지만 정부는 아직까지 개별 종교인이 어느 정도 소득을 올리고 있는지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세원 파악에 나선다 해도 종교단체가 작성한 회계자료에 의지해야 하는데, 현재는 소득신고 의무 자체가 없어 대다수 종교단체의 회계처리가 극히 불투명한 상태다.
때문에 일부 시민단체는 “종교법인법 등을 제정해 종교단체에 최소한의 재무 투명성을 갖출 의무라도 부여해야 효과적인 과세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세제실 관계자는 “성스러운 영역에 세속적인 자료를 요구한다며 반발이 심할 것으로 예상돼 입법도 쉬운 일이 아니다”면서 “일단은 재무관련 자료를 준비해 달라는 안내문을 보내는 게 종교인 과세 작업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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