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의 소유와 경영이 일찌감치 분리된 서구와 달리 아시아에서는 여전히 대기업 창업주와 가족이 경영권을 지배하는 가족기업이 위세를 떨친다.
크레디트 스위스 분석에 따르면 아시아 증시에 상장된 기업의 절반이 가족기업이고, 이들은 전체 시가총액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밀실경영에 따른 폐해도 만만치 않지만, 이들이 경쟁기업보다 한 박자 빠른 선택과 집중 전략을 통해 아시아의 급속한 경제성장에 견인차 역할을 해 왔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아시아적 가치'의 상징과도 같았던 대표적 가족기업들이 최근 잇따른 내부 불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BBC 방송 인터넷판은 18일 '불화가 아시아 가족기업을 위협하다'라는 기사에서 한국 인도 대만 홍콩 등을 대표하는 대기업에서 발생한 총수 일가 내부의 상속ㆍ경영권 분쟁을 소개했다.
BBC가 든 대표적 사례는 삼성그룹에서 발생한 상속권 분쟁이다. 이건희(70) 회장의 형과 누나가 이 회장을 상대로 선대(이병철 회장)에게서 물려받은 상속 지분의 분할을 요구한 소송이다. 대만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2008년 사망한 '경영의 신' 왕융칭(王永慶) 전 대만플라스틱 그룹 회장의 장남인 윈스턴 왕(61)이 그룹 요직을 장악한 형제들을 상대로 40억달러의 지분을 요구하는 소송이 진행 중이다. 인도 최고 부자 중 한 명인 무케시 암바니(55)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 회장은 아버지가 남긴 유산을 놓고 형과 5년째 상속 분쟁 중이고, 마카오 카지노 재벌 스탠리 호(91)는 지난해 자녀들을 상대로 재산분쟁에 휘말린 적이 있다.
문제는 맨손으로 거대 제국을 일군 아시아권 대기업 창업주들이 대부분 80~90대의 나이여서 이런 분쟁이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점. 또 가족 간 분쟁이 기업 의 경쟁력 저하 요인으로 작용하고, 급기야 해당 국가경제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중화권 가족기업의 상속문제를 연구한 조지프 판 홍콩중문대 교수는 "이들 기업들이 소속 경제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점을 감안하면, 가족기업의 문제는 (경제 전체를 위협하는) 시스템적 리스크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해당 기업 입장에서도 총수 한 사람이 장악하는 가족기업의 특성상 경영권 세습 시기는 경영 공백이 발생하는 위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재산은 넘겨줄 수 있어도 창업주의 카리스마와 장악력은 물려주기 어렵기 때문이다. 판 교수가 경영권 승계를 경험한 250개 기업의 사례를 연구한 결과 경영권 승계 이후의 주가는 이전보다 60% 하락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