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앨범의 핵심은 욕망입니다. 즐겁게 놀고 싶고, 예쁜 여자도 만나고 싶은 사내의 욕망이 격동하는 거죠. 나처럼 30대 후반의 남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낭만을 담고 싶었습니다."
록 밴드 레이니썬 출신의 15년차 뮤지션 정차식(38)이 두 번째 솔로 앨범 '격동하는 현재사'를 내놓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지난해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은 1집 '황망한 사내'를 발표한 지 6개월 만이다. 가내 수공업 방식으로 제작해 홍보 활동도 전혀 하지 않았지만 정차식은 최근 가장 주목할 만한 인디 뮤지션 중 하나로 꼽힌다.
정차식의 음악은 낯설고 새롭다. 록, 트로트, 블루스, 탱고, 전자음악, 왈츠 등 이질적인 장르가 다양한 형태로 뒤섞인다. 대폿집 젓가락 장단과 서구의 리듬이 사이 좋게 공존한다. 정태춘이 톰 웨이츠와 스크리밍 제이 호킨스를 만나 트로트를 노래한달까.
자조적인 회한으로 채웠던 1집과 달리 2집은 수컷 냄새 가득한 날것의 욕망으로 꿈틀거린다. 그는 '나는 너의 사랑을 갈구하는 황무지'('옷깃을 세우고')라며 '이대로 주저앉아 눈물만 훔칠 바엔 내 마지막을 여기에서 확인하마'('파이팅맨')라고 노래한다.
정차식은 철저히 독립적인 방식으로 두 장의 앨범을 만들었다. '캡슐 로망'이라는 독립 레이블을 만들고 방음을 고려해 서울 북아현동 꼭대기에 얻은 작업실 겸 거주 공간에서 작곡ㆍ편곡ㆍ연주ㆍ녹음을 거의 혼자 해냈다. 그렇게 만든 1,2집의 앨범당 제작비는 400만~500만원이 들었다. 정차식은 "사람들과 엮이는 게 싫고 간섭 받는 것도 싫어 내 돈 들여 만들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레이니썬으로 활동하며 얻은 상처를 다시 입기 싫었던 것이다. "서태지 컴백 콘서트(2000)에서 오프닝으로 공연할 때가 레이니썬의 전성기였습니다. 서태지씨가 세운 레이블 괴수대백과사전과 이야기가 오가기도 했는데 당시 매니저와 오해가 생기면서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 돼버렸죠. 그땐 음악을 그만둘 생각까지 했어요."
소름 돋게 하는 보컬로 '귀곡메탈'이란 별명까지 얻었던 레이니썬은 2003년 3집 'Woman'을 내며 끝난 것과 마찬가지였다. 4집 'Origin'(2009)은 사실상 잠정 해체 선언이었다. 홀로서기를 시작한 그는 영화와 드라마 음악을 작곡하며 빈곤한 호주머니를 채워나갔다. 고된 밤샘 작업 도중 그는 맥주 캔을 들이켜며 솔로 데뷔 앨범 '황망한 사내'의 단초를 찾았다. "갑자기 황망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0년 넘게 음악을 했는데 서른일곱이 된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런 감정을 음악으로 옮긴 게 1집입니다."
정차식의 올해 목표는 우선 공연이다. 다음달 28, 29일 열리는 '뷰티풀 민트 라이프 2012'를 시작으로 관객들과 부지런히 만날 계획이다. "뮤지션이란 새로운 것을 제시해줘야 한다"고 믿는 그는 벌써부터 3집을 준비 중이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게 좋아요. 최소한의 악기로 클래식한 느낌을 내고 싶습니다. 첼로나 콘트라베이스와 독백을 주고받는 형식이 될 것 같아요."
고경석기자 kave@hk.co.kr
김주영기자 will@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