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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기 기자의 Cine Mania] '똥파리'를 엠마 왓슨이 좋아한다고? 한국 대중문화의 힘

입력
2012.03.19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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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이다. 국내 한 영화인은 프랑스에서 수입한 영화의 스크리너(영화 파일이 담긴 일종의 DVD) 배송을 목이 빠지도록 기다린 적이 있다. 개봉을 앞두고 자막 작업 등을 해야 하는데 오래 전 보냈다는 스크리너는 예정일이 지나도 도착하지 않았다. 결국 수소문을 해보니 서울로 와야 할 스크리너가 평양에 가 있었다. 국제 특송 과정에서 혼선이 빚어진 것이다. 얼마 전까지 베를린을 방문하는 한국인에게 독일인들이 왜 직항 비행기를 타지 않았느냐고 간혹 물었던 것과 궤를 같이하는 사연이다. 한때 베를린과 평양 사이엔 동독 시절에 개설된 직항노선이 운영됐다.

"안녕하쉐요?"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진행요원이 어눌한 한국어로 인사를 건넸을 때 참 별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한국어는커녕 영어 인사도 잘 던지지 않고 줄기차게 프랑스어를 고집하던 이전과는 너무나 딴판이었기 때문이다.

'똥파리'. 2009년 로테르담영화제에서 대상인 타이거상을 받은 한국 독립영화다. '해리 포터' 시리즈로 국내 영화 팬들에게 친숙한 엠마 왓슨이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로 꼽았다 해 지난주 화제가 됐다. '똥파리'는 독립영화로선 과분한 흥행 성적(12만명)을 올린 영화다. 그래도 대중에겐 낯선 이름이다. 왓슨의 언급 덕분에 인터넷에서 주요 검색어가 됐다.

믿어지지 않아서였을까. 발언의 진위를 놓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가벼운 음로론까지 제기됐다. 왓슨이 지목한 'Breathless'는 '똥파리'와 영문 제목이 똑같은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왓슨은 한 패션잡지의 인도판에서 'Breathless'를 언급했는데 인도 편집자가 왓슨의 뜻과는 무관하게 영화 영문 제목 앞에 양익준 감독의 이름을 붙였다는 주장도 나왔다.

믿거나 말거나. 왓슨에게 직접 물어보려 시도하거나 패션잡지 인도판 담당자에게 전화할 만큼 중요한 사안은 아니니까. 하지만 우스개에 가까운 음모론이 맞다면 오히려 더 흐뭇한 일 아닐까. 잡지 편집자가 불세출의 프랑스 거장 고다르 대신 양 감독의 영화를 먼저 떠올린 것일 테니까.

"요즘엔 한국에서 왔냐고 먼저 물어보기도 한다." 지난해 칸에서 만난 한 재불동포의 말이다. 동아시아 사람을 보면 중국과 일본을 먼저 입에 올리던 프랑스인들이 대중문화를 통해 한국인을 이제 알아보기 시작했다는 것. 외국에서 한국 영화감독과 배우와 가수의 이름이 언급되는 게 이젠 별다른 뉴스가 안 되는 시대. 그래도 한국 대중문화에 담긴 국가경쟁력을 새삼 떠올리게 한 지난주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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