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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비례대표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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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비례대표의 정치학

입력
2012.03.19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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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4ㆍ26 총선을 앞두고 김대중 평화민주당 총재는 전국구 11번으로 등록했다. 지지자들은 "당선이 어려운 번호"라고 걱정했고, 반대파는 "DJ가 판단력을 잃었다"고 폄하했다. 불과 5개월 전 13대 대선에서 양김의 분열로 노태우 민정당 후보에게 패배한 상황이어서 DJ의 평민당, YS의 통일민주당 모두 국민들로부터 혹독한 비판을 받는 처지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DJ의 배수진 전략은 지지자들을 결속시켜 평민당을 제1야당으로 부상하게 만들었다.

■ 당시 평민당의 전국구 1번은 여성운동가인 박영숙이었지만 그 다음으로 송현섭 이동근 등 재력가들이 포진했다.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도 거부인 송두호, 김인곤을 각각 1번에 배치했다. 선거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반면 돈이 넘치는 민정당은 채문식 윤길중 정석모 등 거물정치인을 1~3번에 공천했다. 연말 대선을 앞둔 14대(92년)에서는 민자당 1번 김영삼, 민주당 1번 김대중, 국민당 3번 정주영 등 대선 후보들이 모두 선봉에 섰다.

■ 2000년 15대에서는 대통령인 YS가 이회창 이홍구 등 대권주자를 신한국당 1, 2번에 포진시켰고 DJ는 다시 한 번 국민회의의 14번을 택하는 전략을 썼다. 비례대표라는 명칭이 도입된 16대(2004년) 때는 한나라당 1번 이회창, 민주당 1번 서영훈, 자민련 1번 김종필이었다. 정당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이 배분되기 시작한 17대에서는 열린우리당 1번에 장애인운동가인 장향숙, 한나라당 1번에 학자인 김애실 등 모두 여성이 배치됐다.

■ 전국구나 비례대표는 직능 대표성과 전문성을 보완하고 소수 정파에 국회 진입의 기회를 주기 위한 제도다. 1963년 6대 국회에 처음 도입될 때는 5ㆍ16 쿠데타 공신들의 논공행상을 위한 의도가 더 컸고, 이후에도 득표전략이나 정치자금 창구로 활용되기도 했다. 국민의식이 높아지면서 여성 비례대표 절반이 의무화되고 전문가 발탁이 늘어났다. 이번 19대 공천에서는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새누리당 1번을 맡을지, 민주당에는 어떤 새 인물이 등장할지가 관심사다.

이영성 논설위원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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