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총선과 12월 대선을 놓고 미디어에서는 날마다 주요 쟁점을 다루는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다. 의료계에 있다 보니 그 중 가장 눈길을 끄는 쟁점은 역시 복지다. 복지는 국민 전체의 삶의 질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라는 점에서 오히려 늦은 감마저 없지 않다.
그런데 복지와 관련한 정책들을 들여다보면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없는 본말이 전도된 정책들이란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필자가 치료하는 조현병(정신분열병의 새 이름) 환자들의 현실을 보면서 진정한 복지란 무엇인가에 대해 묻고자 한다.
조현병 환자들의 상당수는 조기에 제대로 치료만 받으면 정상적인 사회구성원으로 살아 갈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조기에 제대로 치료를 받기가 쉽지 않다. 병의 특성상 지속적으로 약을 먹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증상이 좀 나아지면 약을 먹지 않아 병이 다시 재발하고 증상이 악화되면 대부분 병원에 입원하는 것 외에는 마땅한 방법이 없다. 이렇게 재발과 입원을 반복하다 보면 횟수가 거듭될 수록 뇌 자체도 파괴되어 사회 복귀와 재활이 아예 불가능해진다. 그래서 정신병원이나 요양시설에 장기 입원하고 있는 환자들도 적지 않다. 그런 환자들 중에는 복지의 혜택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인권마저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2008년 국가인권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초발 정신질환자의 39.9%는 평균 301일 만에 건강보험에서 의료급여 1종으로 전락한다고 한다. 병으로 인해 경제적으로도 매우 불안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는 반증이며 이와 같은 사람들이 복지확대논의에서 최우선으로 고려되어야 되는 이유이다.
이미 복지 선진국들에서는 이런 이유로 1960년대부터 조현병 환자의 치료가 격리를 뜻하는 입원에서 사회복귀를 전제로 하는 재활로 바꿔나갔다. 6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다양한 항정신병약물의 부재로 조현병 환자들은 입원 위주의 치료가 불가피했으나 새로운 약물과 제형의 발달로 탈원화의 토대가 마련되자 즉각적으로 치료 패러다임을 바꿔 나간 것이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조현병 환자들의 탈수용화와 재활에 필수인 장기지속형 제제를 사용할 경우 나라에서 인센티브를 줄 정도다. 반면 우리는 패러다임의 변화는커녕 이미 개발된 제형을 사용하는데도 까다롭기 그지 없다. 의사가 처방을 하려 해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조현병 환자들을 위해 당장 천문학적 비용의 재활시설을 지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조현병은 환자들이 처방된 약물을 지시한 대로 복용하지 않거나 지속적으로 복용하지 않아서 병의 상태를 악화시키는 질병이다. 환자들의 재발을 효과적으로 막아 입원 횟수를 줄이거나, 입원하더라도 기간을 줄여 전체적으로는 의료 비용이 감소하는 신약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다. 그림만 그럴싸한 먼 미래의 청사진보다 실질적으로 혜택이 필요한 사람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진정한 복지이기에 이런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서부터 복지가 출발해야 한다고 본다.
복지를 논하려면 우선 사회적으로 최저 취약계층의 복지를 고려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또 건강하고 성숙한 사회라면 마땅히 자신의 이익을 대변할 능력조차 갖추지 못한 사람들을 오히려 세심하게 챙기고 소외되지 않도록 돌볼 수 있어야 한다. 요즘 뜨겁게 벌어지는 복지 논쟁 속에서 정작 도움이 절실한 조현병 환자들은 사각지대에 있지 않은지 관계된 이들 모두가 한번쯤 되짚어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현병 환자들도 이제는 삶의 질을 높이는 '복지'를 누릴 수 있는 날이 오길 간절히 기대해본다.
정인과 고려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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