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香港)은 남중국해에서 중국 대륙을 들고나는 천혜의 항구다. 중국 남해함대가 관할하는 이곳에 15일 미 해군 7함대 기함 블루리지(LCC 19)가 기항했다. 승조원 휴식과 관광을 위해서다. 7함대 소식지는 홍콩은 해군이 가장 좋아하는 기항지이며, 블루리지의 11번째 방문이라고 전했다.
2만 톤 크기 상륙전 모함 블루리지는 일본 요코스카(橫須賀)에 전진 배치된 미 7함대 지휘함이다. 승조원 800여명과 함대 지휘부 장교 216명 및 사병 400명이 함께 탄다. 역할에 걸맞게 최고의 지휘 통제 통신 컴퓨터 정보(C4I) 능력을 갖고 있다. 남중국해를 비롯한 서태평양에서 중국과 미국의 해군력 경쟁이 한창이라는 때에 7함대 기함의 홍콩 기항은 언뜻 의아하게 비칠 수 있다.
두 나라 해군은 냉전 종식 이후 상대편 항구에 가끔 기항한다. 남해함대 사령관은 순양전대를 이끌고 미 태평양함대의 모항 샌디에이고와 하와이, 멕시코 페루 칠레 호주를 순방했다. 그 뒤 필리핀 인도 프랑스 영국 캐나다 남아공 등 세계 어디든 간다. 미군과 조난선박 구조, 해적퇴치 훈련도 한다.
김관진 국방부장관은 얼마 전, 제주 해군기지에는 미국은 물론 중국과 일본 해군도 기항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을 견제하는 미군 기지가 될 것이라는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서다. 별도 협정과 정부 승인 없이 미 해군이 상주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진보 언론과 인터넷에는 온갖 황당무계한 주장이 난무한다.
대표적 사례를 보면 이렇다. "한미행정협정(SOFA)에 미군 선박은 어디든 입항료를 내지 않고 출입할 수 있게 돼 있다. 그러니 승인 없이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다"는 주장이다. 입항료 면제규정을 왜곡한 논리는 애초 말이 안 된다. 진보적 안보 전문가로 행세하는 이가 이런 수준이다.
해양 전략가와 정치인, 언론이 앞다퉈 중국의 '해양 궐기'위협을 경고하며 해군력 증강을 외치는 것은 틀림없다. 미국은 태평양함대의 전진배치를 늘리고, 필리핀 베트남의 해군기지 확보를 서두르고 있다. 그러니 중국과 가까운 제주 해군기지도 탐낸다고 볼만 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공연한 억지 주장일 뿐이다.
7함대는 도쿄만의 요코스카와 남쪽 큐슈의 사세보(佐世保) 등 옛 일제 해군 주력기지를 해상자위대와 함께 쓰고 있다. 이 곳에는 정비 보급 주거 등 방대한 지원시설이 있다. 또 동중국해 오키나와와 괌의 핵잠수함 기지도 수상함 기지로 쓸 수 있다. 이에 비해 제주 해군기지는 항공모함 등 7함대 주력이 상주할 지원시설이 없다. 지금도'반대 행동'이 요란한 곳에 미군 시설을 짓는 일은 예상할 수 없다.
제주 기지가 우리 안보에 긴요하다는 것은 민주통합당도 인정했다. 그러나 반대 세력은 '평화의 섬' 논리를 고집한다. 한반도 중립화 주장을 닮았다. 자원과 영유권 다툼이 치열한 남중국해도 핀란드화 주장이 있지만, 미ㆍ중ㆍ일과 필리핀 베트남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호주 인도 등은 저마다 해군력 증강에 힘 쏟는 게 냉엄한 현실이다.
이걸 중국에 맞서는 군사전략으로 볼 것만도 아니다. 중국 위협론을 떠드는 전략가들은 늘 "무력 충돌 가능성은 아주 낮다"고 전제한다. 중국 해군이 미국에 도전하기에는 아직 멀었고, 중국의 주된 목표는 해상교통로와 자원 확보 등 경제적 국익이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보수든 진보든 물색없이 덩달아 중국의 위협을 과장한다.
서태평양의 해군력 경쟁은 세계 경제와 무역의 중심이 대서양에서 옮겨온 데 따른 국가 생존경쟁을 반영한다. 고대 지중해 도시국가에서 제국주의에 이르도록, 바다의 무역로와 해군력은 생존 경쟁의 핵심수단이었다. 그 역사의 상징 홍콩에 기항한 블루리지는 눈을 부라리면서도 서로 어깨를 비비며 경제적 국익을 다투는 시대임을 일깨운다. 제주 해군기지는 군사적 안보를 넘어 미래의 국가 생존을 위한 것이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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