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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팔기에 나선 베이비부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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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팔기에 나선 베이비부머들

입력
2012.03.19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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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집값 급등 주역… 이제 하락 이끈다

대기업 부장으로 일하다 지난해 퇴직한 이선호(56)씨. 최근 경기 분당의 138㎡짜리 아파트를 6억1,000만원에 팔고 용인의 소형 아파트 전세(1억8,000만원)로 이사했다. 은행 빚 1억4,000만원을 갚고 나니 손에 쥔 돈은 2억9,000만원. 이씨는 이 중 1억5,000만원으로 분당의 한 상가에 식당을 차렸고, 나머지 1억원은 서울 화곡동의 60㎡짜리 오피스텔을 구입해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45만원을 받고 있다. 그는 “대기업에서 30년 청춘을 보냈지만, 내집 마련하고 아이들 교육시키느라 등골이 다 뽑혔다”면서 “한 채뿐인 집을 처분하지 않고는 생활비를 마련할 길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본격적인 은퇴가 시작된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가 주택시장의 메가톤급 변수로 떠올랐다. 지금까지 베이비붐 세대는 주택 구매력이 가장 왕성한 계층이었다. 주택시장에 본격 진입했던 1985~1990년엔 소형 주택가격 급등을 견인했고, 2000년대 들어선 중대형으로 대거 갈아타면서 가격 상승을 이끌었다. 전문가들은 이제 은퇴 시기를 맞은 베이비붐 세대가 노후 자금 마련을 위한 부동산 처분에 본격 나서면서 또 한차례 주택가격 결정에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등에 따르면 2010년 말 현재 베이비붐 세대는 전체 인구의 14.6%인 688만명. 특히 이들이 세대주인 가구는 전체 가구의 21%에 이를 만큼 거대 계층이다. 하지만 대출 받아 집을 넓히고 아이들 교육시키느라 보유 주택을 빼면 금융자산이 턱없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결국 은퇴 후 소득 감소를 감안할 때 부동산을 팔아 자산 포트폴리오를 금융자산 위주로 재편하거나 창업에 나서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는 실정이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황원경 연구위원은 “은퇴 후 노후생활 자금으로 최소 3억6,000만원, 적정 수준으론 5억4,000만원이 필요하다”며 “현재 총 자산으로 이를 충당할 수 있는 베이비붐 세대는 24%에 불과하고, 그나마 자산 구조가 주택 등 부동산에 편중돼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베이비붐 세대들이 노후자금 마련을 위해 주택 처분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게 황 위원의 전망이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도 우리나라 고령자의 주 소득원 가운데 금융자산 소득이나 연금 등의 비중이 워낙 낮아 부동산 매각을 통해 은퇴자금을 마련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일본과 미국은 60세 이상 고령자 중 연금 생활자 비중이 각각 57.4%와 55.8%로, 우리나라(6.6%)보다 9배나 높다.

실제 2000년대 중반 이후 베이비붐 세대의 주택시장 출구전략이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이들 연령층은 최근 5년간 전체 연령층에 비해 4배나 많이 주택보유 비중을 줄였다. 지난해 시중은행 지점장에서 퇴직한 김영배(55)씨는 서울 강남의 15억원짜리 아파트를 팔고 분당 7억원짜리 아파트로 옮겼다. 그는 대출 등을 갚고 남은 돈 5억원으로 경기 수원의 상가 점포 3개와 서울 영등포 소형 오피스텔에 투자했다. 김씨는 “비싼 집을 깔고 있어봐야 고정 수입이 없으면 퇴직금 까먹는 건 순식간”이라며 “이제 300만원 이상의 월세가 들어와 노후 걱정을 덜었다”고 말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손은경 연구원은 “베이비붐 세대의 본격적인 은퇴에 따른 주택수요 감소와 주택담보대출 위축 등 주택시장의 변화에 적극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태훤기자 besame@hk.co.kr

■ "어떻게 장만한 집인데…"

베이비부머는 집에 대한 애착이 어느 세대보다 강하다. 직장에 들어가면 주택청약저축부터 가입했고, 어느 정도 돈이 모이면 대출을 받아 소형 아파트를 마련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중대형으로 갈아타는 재미에 피곤한 줄 모르고 달려왔다. 하지만 은퇴 시기에 접어들고 보니 노후 버팀목이 돼줄 자산은 집 한 채가 전부다. 이래서 부족한 노후자금 마련을 위해 집을 처분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나온다. 반면 집은 노후의 마지막 안전장치여서 끝까지 보유할 것이라는 의견도 만만찮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손은경 연구원은 베이비부머가 집을 처분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는 “베이비붐 세대의 자산구조를 분석해 보면 가계부채로 부동산 자산을 늘린 것으로 추정된다”며 “은퇴 후 소득이 감소하면 부채상환 부담 탓에 부동산 처분 압력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현재와 같은 부동산경기 침체 상황에선 집값 상승을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금리인상, 금융권 대출 회수 등이 이뤄지면 부동산 처분이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KB금융지주 조사에 따르면 베이비붐 세대의 67~71%가 평균 7,500만~8,800만원의 빚을 갖고 있다.

대학(원)생 자녀의 학비나 결혼자금 지원 부담도 부동산 처분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지적됐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장은 “선진국처럼 우리나라도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본격화하면 매물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며 “장기적으로 집값이 하락세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처분이나 다운사이징으로 생긴 여윳돈으로 노후자금 마련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함영진 부동산써브 실장은 “최근 강남 지역에선 은퇴자들을 중심으로 집을 처분해 원룸이나 상가주택 등으로 갈아타려는 수요가 급증했다”면서 “기존 집을 줄여 빚을 정리하고 여유자금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갈수록 활발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베이비부머에게 집은 처분해야 할 자산이라기보다 노후를 보장하는 최후의 안전장치이며 자녀 상속 등의 가치를 지녀 60세 이후에도 계속 보유할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박원갑 국민은행 수석부동산팀장은 “어렵게 집을 장만한 베이비부머는 집에 대한 집착이 어느 세대보다 강해 은퇴 후 한동안 퇴직금, 예금, 재취업 등으로 생활자금을 융통하며 어떻게 해서든 집을 보유하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재룡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도 “주택연금 가입건수가 매년 급증하는 것만 보더라도 집을 끝까지 보유하며 노후 밑천으로 사용하려 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부동산에 편중된 자산구조는 시급히 재편돼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조은상 닥터아파트 리처치팀장은 “베이비붐 세대는 빚을 내서 비싼 가격에 주택을 구입했기에 은퇴 후 부동산 비중을 줄이기가 쉽지 않다”며 “하지만 주택경기 침체가 지속되는 가운데 연금 등 소득이 충분치 않으면 노후에 불편을 초래할 가능성이 큰 만큼 가계자산의 구조조정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 정부가 매입하거나 역모기지론 연령 낮춰야

베이비부머 자산의 80%는 부동산이다. 요즘 같은 불경기엔 부동산값 폭락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는 셈이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이들의 노후를 위해 자산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현아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베이비부머가 부동산을 쉽게 처분할 수 있도록 정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부동산 불황기엔 손실을 피하기 위해 매물을 내놓지 않아 전셋값이 치솟는 부작용이 있으니, 정부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베이비부머의 집을 매입해 공공임대주택으로 활용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정부가 부족한 재정여건 속에 수십만 호의 임대주택을 짓기보다는 기존 주택을 임대용으로 활용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김 연구위원은 “주택연금만으론 다양한 노후자금과 주택처분 수요를 충당하기 어려우니 베이비부머가 자금을 융통할 수 있는 방안을 제도권에서 마련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택을 담보로 일정 금액을 연금식으로 받는 역모기지론 신청 연령을 낮춰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금은 주택 소유자와 배우자 나이가 만 60세 이상이어야만 신청이 가능해 사실상 55세 이전에 은퇴하는 베이비부머에게 당장 도움이 되긴 어렵기 때문이다. 조은상 닥터아파트 리서치팀장은 “부동산에 편중된 가계 자산을 구조조정 할 수 있도록 주택연금의 가입조건을 완화하는 등 다양한 유인체계를 마련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일본처럼 정년 연장을 통해 퇴직 이후 근로소득원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의견이다. 주명룡 대한은퇴자협회 회장은 “공적연금이 받쳐주지 못하는 부분을 채워 노년 빈곤을 예방하려면 정년을 연장해 직장에 더 머물도록 하고, 퇴직한 시니어 계층도 건강상태에 맞는 일자리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관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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