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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가진 분들, 미국에 責잡히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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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가진 분들, 미국에 責잡히지 말라

입력
2012.03.18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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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회장 부인 A는 9년 전 미국에 입국할 때 현금 2만5,000달러를 휴대한 기록이 있다. 한국에서 출국할 때 신고하지 않았다면 외화밀반출이다. 그는 로스앤젤레스 인근 부촌 베벌리힐스에도 부동산이 있다. 유명 연예 기획자 B는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에서 2개의 서로 다른 여권을 이용해 거액을 빌려 도박을 했다. 인기 높은 여성 연예인 C는 뉴욕 맨해튼에 아파트 2채를 샀고, 숨진 뒤 재산이 적어 모두를 놀라게 한 한 인사의 딸 D는 미국에서 현금 20만 달러를 주고 고급 자동차를 매입했다.

이들 4명이 돈을 미국에 가져올 때 적법한 절차를 거쳤는지 한국에서 알 길은 없다. 그것을 증명할 흔적이 없을 테고, 그래서 본인들이 부인하면 항간에 나도는 그렇고 그런 얘기로 치부될 것이다. 그러나 이들 4명의 행위에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모든 것이 달러로 이뤄졌고, 그래서 미국에는 그 기록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에선 부인할 수 있어도 기록이 있는 미국에서는 거짓이 통할 리 없다.

믿을 수 없다면 지난해 12월 미 의회가 통과시킨 이란 추가 제재법을 연구해보면 된다. 이 법의 핵심은 세계 금융기관들이 이란 중앙은행과 거래할 경우 미국과의 거래를 금지한다는 내용이다.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가 어떻게 거래되는지 안다면 미국과의 거래 단절이 무얼 의미하는지도 알 수 있다. 서울 명동의 E은행에서 삼성동의 F은행에 100달러를 송금할 때 우리가 모르는 사실은 그 거래가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를 거쳐 처리되며 거래 기록이 미 전산망에 남는다는 것이다. 세계의 모든 달러 거래는 연준을 통하도록 돼 있다. 이란 추가 제재법은 세계 금융기관들에게 앞으로도 달러 거래를 하고 싶다면, 영업을 계속하길 원한다면 이란과 거래를 끊으라고 최종 통보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여기에는 미국은 세계 모든 달러 거래를 지켜보고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미국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은 국내 기업인, 정치인, 유명인사들에게 발 저리고 가슴 뜨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돈깨나 있고, 지명도 높은 국내 인사치고 미국에 재산 하나 없는 이가 거의 없다는 말은 정설처럼 굳어져 있다. 허드슨강 너머로 맨해튼의 먼진 야경을 볼 수 있는 곳에 전직 대통령의 자녀가 집을 장만하려 한 것도 가진 자들의 행태를 흉내 낸 것으로 밖에 이해되지 않는다.

이들은 미국을 마치 은닉재산, 탈세자산의 안전한 귀착지로 여기는 듯하다. 그런 한편에 미국에 돈이 도착만 하면, 더 이상 한국과 같은 감시망이 없다는 안도감이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달러를 쓸 수밖에 없는 이들이 미국 밖에서 한 행태까지도 들여다 보고 있다. 미국이 한국식 비위까지 들추진 않을 거라고 믿고 싶겠지만, 그렇지 않은 실례는 얼마든지 있고 미국의 잣대는 더 엄격하다. 한국에서 세금만 내면 그만일 의심스런 돈 거래가 미국에선 최고 20년 징역형이 가능한 돈세탁이 될 수 있다. 달러로 책잡힐 일을 했다면 장차 미국에서 무슨 변을 당할지, 약점을 덮기 위해 또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미국의 한 인사는 미국에 자회사를 둔 한국 대기업이 비위 조사를 받자 이전가격 조정을 협상안으로 제시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판매한 상품의 세금을 낼 때 한국과 미국의 비율이 현재 9대 1이라면 앞으로 미국에 더 많은 세금을 내겠다는 것이다. 국익을 버린 굴욕적 제안이 거절당했다는 말에도 뒷맛은 개운치 않았다.

이태규 워싱턴 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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