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인천 남동구 고잔동의 한 카센터. 10여명에게 둘러싸인 한 남성이 입고된 차량 한대의 보닛을 열고 다짜고짜 묻는다. “이 차는 왜 수리를 맡겼을까” 아무도 선뜻 답을 못한다. “엔진 주변이 마모된 것을 보라. 엔진오일을 교환하지 않고 1만 km 이상 달린 것이다. 이러면 기계장치에 오일 순환이 안 된다. 엔진을 통째로 갈아야 한다.” 그리고 덧붙인 한 마디. “나도 처음 본 차인데, 아마 그럴 거다.”
만화에나 나올 법한 ‘자동차의 신’도 아니고 단 10초 만에 어떻게 이런 진단이 가능할까.
그는 자동차 업계의 ‘살아있는 전설’ 박병일(55)씨다. 그는 중학교를 중퇴한 정비공 출신으로 16개의 국가기술자격과 9건의 특허, 각종 훈장 등을 휩쓸며 명장 반열에 올랐고, 그 분야 ‘그랜드슬램’도 달성했다. 그 동안 출간한 자동차 전문서적만 37권에 이른다.
그의 기술은 폐차선고 받은 차도 부품 몇 개를 교환해 새 생명을 불어넣을 정도. 이 쯤되면 ‘미다스의 손’으로 불러도 충분하다. 정부도 이런 그의 능력을 인정, 지난 2002년 ‘국내 1호 대한민국 명장’ 타이틀을 부여했다. 현재까지 자동차 명장은 단 3명 뿐이다.
그런 그가 요즘 새로운 재미에 푹 빠졌다. 이달 초부터 시작한 ‘명장 아카데미’다. 대한상공회의소 인력개발사업단이 고용노동부 후원을 받아 올해 처음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산업현장 기술 명장들의 기능과 노하우를 전수하는 내용.
박 명장은 “처음 취지를 듣는 순간 이거다 싶었다”며 “드디어 진짜 기술을 전수할 기회가 왔다”고 했다. 그는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해보자는 마음으로 자신이 운영하는 카센터 3층을 아예 강의실로 개조했다. 이달 초 시작한 강좌는 이날로 2주차에 접어들었다.
사실 그는 몇 년 째 후진 양성에 몰두해왔다. 신성대 자동차공학부 겸임교수 등으로 일하며 약 30만 명의 교육생이 그를 거쳐갔다. 하지만 항상 허전했다. 그는 “슈퍼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함수를 가르치는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국내의 자동차 교육은 아직도 이론에만 편향돼 있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자동차를 전공한 이들도 막상 현장에 가면 백지상태로 어깨너머 배우는 식이란다. ‘공구는 빌려줘도 기술은 빌려주지 마라’는 문화 탓에 그마저도 쉽지 않다. 14살에 버스정비공장에 들어간 그가 한 평생 느껴온 폐단이다.
그래서 그의 교육은 철저히 현장실습 위주다. 명장 아카데미의 학생수는 단 15명. 밀도 있는 교육을 위해 인원마저 최소화했다. 하루 6시간씩 6개월간 집중적인 교육이 이뤄진다. 그는 “총 700시간이 주어진 셈”이라며 “제대로 된 기능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모범답안을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실제로 교육생으로 선발된 이들 가운데 자동차를 전공한 이는 단 한 명뿐이다. 대부분 자동차에 관심은 있었지만 자동차 정비공이라는 주변의 시선 때문에 주저하다 뒤늦게 진로를 바꾸려는 이들이다. 남태경(35)씨는 “8년 동안 박물관에서 행정업무를 하다 이 프로그램을 보고 마지막 기회다 싶어 회사를 그만뒀다”며 “자동차 기술을 익혀 자동차 관련 개인 사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 명장은 “자동차 산업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만큼 새로운 일자리가 많은 분야”라며 “정비가 아닌 딜러 일을 하더라도 자동차에 대한 이해를 갖춘 인력이 많다면 그만큼 산업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개인적으로 기술명장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은 다 이뤘고 이제 제대로 된 기능인을 양성하는 인간 명장으로 사는 게 꿈”이라며 “이번 명장 아카데미가 그 출발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