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건호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가 제자 지도에 헌신하는 과학자로 꼽은 장진 경희대 정보디스플레이학과 교수가 이번에는 열혈 과학자라며 이영희 성균관대 에너지과학과 교수를 소개한다.
1982년 경희대에 임용된 이후 난 벌써 30년째 실험 분야 연구를 한다. ‘아몰레드’로 잘 알려진 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AMOLED) 개발에 참여할 때도 이 물질의 물리적인 성질을 밝히고, 측정하는 게 내가 맡은 임무였다. 실험해서 나온 데이터를 분석하려면 매번 이론을 연구한 과학자의 도움을 받는다. 실험 결과에 대한 판단을 정확하게 하기 위해서다. 특히 반도체 쪽은 이론, 실험, 제작, 이 세 가지가 톱니바퀴처럼 맞아 돌아가야 멋진 성과를 낼 수 있다.
그런데 이영희(57ㆍ사진) 성균관대 에너지과학과 교수는 혼자서 세 가지를 다 한다. 최근 이 교수는 탄소 원자가 벌집 모양으로 배열된 그래핀과 탄소나노튜브로 투명하면서 잘 휘는 메모리 소자를 개발해 주목을 받았다. 휘어지는 메모리는 구기거나 접어도 다시 펴서 쓸 수 있는 태블릿PC를 만드는 데 필요한 핵심 기술이다. 2005년엔 국가 석학으로 꼽히기도 했다. 그가 이처럼 두각을 나타내는 데는 이론을 연구했던 그의 배경이 톡톡히 작용했다.
내가 이 교수를 처음 만난 건 1980년대 후반 전북대 반도체물성연구센터에서였다. 2001년성균관대로 자리를 옮기기 전, 1986년 전북대에 임용된 그는 당시 반도체 이론을 주로 연구했고, 우린 공동 연구도 몇 차례 진행했다.
같은 반도체 분야라도 이론과 실험 사이에는 일종의 장벽이 있다. 이론을 연구하던 사람이 실험을 하려면 실험기기 조작 방법 등 기초부터 새로 쌓아 올려야 하는데, 학문의 틀이 잡힌 교수 입장에선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교수가 되면 주로 자기 연구 분야에 머물기 마련인데, 이 교수는 그렇지 않았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부족하다 싶으면 물어보고, 반도체물성연구센터에서 실험기기를 운영해보며 실험을 어떻게 하면 되는지 하나 둘 깨우쳤다.
교수는 그의 두 번째 직장이다. 원래 이 교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역무원으로 근무했다.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대입 준비를 하던 중 분석물리학이란 과목을 듣다가 물리학을 전공하기로 정했단다. 문학 전공을 꿈꾸던 문학소년이 물리학 교수가 된 이유는 물리학 역시 세상을 다채롭게 그려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과학은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탐구하는 학문이다.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다 보니 생각만큼 연구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도 많다. 그럴 땐 머리를 쥐어 잡고 자책하기보다 한 발 뒤로 물러서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태도가 중요하다.
이 교수는 자신에게도, 연구실에 있는 연구원에게도 좌절 금지를 강조한다. 이 교수라고 자책했던 일이 없었을까. 중요한 건 장벽이라 생각한 무언가를 뛰어넘을 만큼의 열망과 열정이다. 난 그것을 이 교수에게서 본다.
정리=변태섭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