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맹주 자리를 놓고 신경전을 벌여 온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시리아에서 각각 반군과 정부군에 무기를 제공하며 사실상의 대리전을 시작했다. 이스라엘도 반군에 무기를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져, 내전 상태의 시리아는 갈수록 주변 강대국의 각축장이 되어가는 모양새다.
17일 AFP통신이 아랍권 외교소식통을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사우디의 군사 장비가 요르단을 통해 시리아 반군인 자유시리아군(FSA) 측에 보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사우디가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민간인 학살을 규탄하며 시리아 주재 대사관을 폐쇄한 지 이틀 만에 나온 조치다.
사우디와 시리아의 관계는 이달 초 사우디 외무장관인 사우드 알 파이살 왕자가 "시리아 반군은 스스로 무장할 권리가 있다"고 발언하면서 급격하게 냉각됐다. 아드난 마무드 시리아 정보장관은 알 파이살 왕자의 발언에 "사우디와 카타르 같은 나라가 테러리스트(반군)를 지원하고 있다"며 "이들 나라는 시리아 양민을 노리는 테러 행위의 공범"이라고 반박한 바 있다.
사우디의 이 같은 움직임은 시리아 정부군에 무기를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란의 조치와 완벽하게 반대되는 행보여서 주목된다. 이란은 유엔의 무기 금수 조치에도 불구, 지속적으로 아사드 정권에 무기를 공급한다는 의심을 받아 왔는데, 1월에는 이란 특수부대 사령관이 다마스쿠스를 방문해 무기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이달 12일에는 유엔 주재 시리아 대사가 "이스라엘이 반군에 무기를 제공한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와 시아파 국가인 이란의 관계는 지난해 미국 주재 사우디 대사의 암살 음모에 이란이 연루됐다는 정황이 나오면서 빠르게 악화됐고, 바레인의 민주화 시위를 둘러싸고도 양국이 서로의 종파를 지원하는 등 갈등의 골이 커졌다. 올해 들어서는 서방의 이란산 석유 금수 조치 과정에서 사우디가 원유를 증산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 갈등이 더 증폭됐다.
한편 시리아에서는 반정부군 소행으로 보이는 자살폭탄테러가 이어졌다. 17일 수도 다마스쿠스 시리아군 정보부 사무실 인근에서 두 건의 자살폭탄테러가 발생해 최소 27명이 사망하고, 140명이 다쳤다. 18일에도 북부 알레포 지역에 폭탄테러가 발생해 최소 27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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