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허스트, 트레이시 에민, 줄리안 오피 등 1990년대 이후 세계 미술계를 휩쓸고 있는 '영국의 젊은 예술가'(yBaㆍYoung British Artists) 그룹의 스승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71). 걸출한 제자들을 길러 낸 영국 현대미술의 아버지이자 저명한 개념미술가인 그의 작품 세계를 소개하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개인전 '단어·이미지·열망' 이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 신관에서 16일 개막했다.
옷걸이, 물컵, 탁상 거울, 의자 등 새로울 것 하나 없는 주변의 물건과 알파벳이 캔버스 위에서 유영한다. 알루미늄 위에 알록달록한 색의 아크릴 물감으로 칠한 작품은 지나치게 간결해 그래픽 디자인처럼 보이기도 한다. 제목이 없는 한 작품에는 'PAINTING'이란 알파벳을 적고 그 위에 소화기, 수갑, 옷핀, 우산 등을 실선으로 그려 놓았다. 영어 단어와 함께 그려진 일상의 오브제 사이엔 연관성이 별로 없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최근 작업은 컴퓨터로 도안한 이미지 200여 개와 즐겨 사용하는 20여 색상에서 골라 작업한 결과물이다. 때문에 출품된 20여 점은 대체로 비슷해 보인다.
지난 15일 전시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마틴은 "회화는 관점이 중요하다. 7년 전부터 일상적 사물로 작업하고 있는데, 그것들이 가진 특별함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작품의 의도를 설명했다. 이는 그가 평생 예술 활동을 통해 얻은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과 궤를 같이 한다.
"예술이란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것이죠. 예술에서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이미 주위에 있는 것을 은유나 상징적으로 다루는 것이죠. 산문이 아닌 시라는 말입니다. 현대의 재앙이라면 바로 이 시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죠."
이 같은 예술론은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던 그의 교수법에도 고스란히 담겼다. 테크닉이나 색채에 대한 감각에 앞선 것은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개념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이라고 그는 강조해왔다. 이 가르침은 영국의 새로운 예술이 탄생하는 단초가 되었다.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다며 남자 소변기를 전시장에 들여 놓은 마르셀 뒤샹의 개념미술을 재현한 마틴의 '떡갈나무'(An Oak Tree, 1973). 물이 담긴 컵을 유리 선반 위에 올린 작품 옆엔 "내가 오크 트리라고 말했기 때문에, 이것은 '오크 트리'이다'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개념과 믿음에 대한 기존의 사고를 전복시킨 이 작품은 영국 개념미술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제자 데미안 허스트 역시 이 작품에 많은 감동과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영국 현대미술의 대부로 불리지만 여전히 실험을 멈추지 않는 그는 "지금이 나의 전성기"라고 말한다. 이번 전시는 그의 50년간의 작품세계가 집대성된 최근작으로 구성됐으며, 그림 속 실선으로 그려진 오브제가 3차원 공간으로 나온 것 같은 조각 한 점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공개된다. 전시는 내달 29일까지. (02) 2287-3500
이인선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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