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결국 민간인 불법사찰 및 증거인멸 사건 재수사에 나섰다. 사실 이는 예견됐던 수순이다. "청와대가 증거인멸에 관여했다"는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의 최근 폭로가 너무도 구체적인데다, 종전 수사결과가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을 워낙 거세게 받은 탓에 검찰로서는 재수사 외의 다른 방도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권 말기가 되면 이 사건을 둘러싼 의혹이 다시 터질 것이고, 재수사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일각의 예상대로 된 셈이다.
재수사의 초점은 우선 증거인멸 부분에 맞춰진다. 2년 전 검찰 수사 당시 공직윤리지원관실 압수수색(2010년 7월 9일) 이틀 전에 버젓이 자행된 컴퓨터 하드디스크 영구 삭제, 문서 파쇄 등이 도대체 누구의 지시에 의한 것인지를 규명하는 게 1차적인 과제다. 당시 수사에서는 진경락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기획총괄과장과 장 전 주무관만 각각 '지시자'와 '실행자'로 지목돼 증거인멸 혐의로 기소됐다.
그러나 "최종석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 행정관이 증거인멸을 지시했다"는 장 전 주무관의 최근 폭로로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장 전 주무관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녹취록도 공개됐다. 녹취록에서 최 전 행정관은 "이영호 비서관한테 원망하는 마음이 좀 있지만 저 사람을 여기서 더 죽이면 안 되겠다는 생각 하나밖에 없었다. 내가 위험을 무릅쓴 것"이라고 말했다. 최 전 행정관과 이 전 비서관이 증거인멸에 매우 깊숙이 연루됐다는 것을 보여주는 정황인 것이다. 검찰로서는 이들 2명의 신병을 확보하는 게 급선무다.
하지만 증거인멸의 실체 규명은 이 사건 수사의 끝이 아니라 오히려 또 다른 시작이 될 공산이 크다. 사건의 지류인 증거인멸의 동기를 밝혀내다 보면 결국 민간인 불법사찰이라는 본류에 이르고, 거기서 청와대 측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가 드러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8월 이 전 비서관 측이 입막음조로 2,000만원을 건넸다"는 장 전 주무관의 증언은 이 전 비서관이 이 사건의 핵심 인물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결정적 단서다. 당초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비선 보고'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이 전 비서관은 1차 수사 때 무혐의 처리됐지만 이번만큼은 사법처리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이후 검찰의 칼끝은 자연스레 사찰을 지시하고 보고받은 최고 '윗선'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다. 이 전 비서관이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보고 내용을 '독식'했다기보다는 또 다른 상급자나 정권 실세에게 보고했다고 보는 게 상식적이기 때문이다. 검찰도 이 점을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재수사에서 최 전 행정관과 이 전 비서관의 혐의만 밝혀낼 경우 또 다시 '부실수사' 논란에 휩싸일 게 뻔한 만큼 그 이상이 필요하다"며 "다만 이 전 비서관이 과연 입을 열지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검찰의 이 사건 1차 수사팀이 수사선상에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장 전 주무관은 "최 전 행정관이 증거인멸을 지시할 당시 '민정수석실, 검찰과도 다 얘기가 됐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또 민주통합당 이석현 의원은 16일 "민간인 불법사찰은 민정수석실도 같이 했으며, 2010년 수사 당시 노환균 서울중앙지검장이 '청와대 대포폰' 부분에 대해 권재진 당시 민정수석과 상의해 없는 걸로 덮기로 했다"는 의혹을 다시 제기했다. 권 당시 수석이 현재 법무부장관이라는 점에서 검찰은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검찰이 이에 대한 조사 없이 수사를 마무리할 경우 또다시 '축소 수사'라는 비판을 받을 게 뻔하다. 검찰이 성역 없는 재수사를 통해 명예회복을 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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