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에 부활의 기지개를 켠 광운대 아이스하키 팀이 '빙판의 기적'을 목표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1979년 창단된 광운대 아이스하키 팀은 30주년이 되던 2008년 2월 제 89회 동계체전을 끝으로 명맥이 끊겼다. 해체보다는'고사'라는 표현이 맞다. 성적 부진을 이유로 학교 측에서 아이스하키 팀에 대한 지원을 중단했다. 체육 특기자 장학금이 지급되지 않았고, 2007년에는 아예 신입생을 뽑지 않았다.
아이스하키는 광운대에 '교기(校技)'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 광운대 아이스하키팀 출신들은 학교의 명예를 높이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 창단 첫 해 고려대와 연세대를 꺾고 대학부 우승을 차지하는 파란을 일으켰고 97년에도 실업팀을 제치고 한국아이스하키리그에서 정상에 올랐다. 팀 해체 후 '부흥 운동'이 꼬리를 물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4월 아이스하키팀 부활이 결정됐고 신입생 12명을 선발, 올해부터 권토중래를 노린다.
부활한 광운대 아이스하키팀의 목표는 첫 승이다. 2005년 10월 종합선수권에서 경희대를 꺾은 후 팀이 해체될 때까지 3년간 승리하지 못했다. 현재 팀을 이끌고 있는 최진철 감독은 2007년 모교 사령탑으로 부임해 아직까지 '승장'의 기쁨을 누린 경험이 없다.
해체 당시와 달리 학교 측의 지원이 든든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4학년이 주축을 이루는 다른 팀과 달리 광운대는 전원이 '새내기'로 꾸려졌다. 가용 자원은 12명. 골리 2명을 빼면 10명의 스케이터로 한 경기를 치러야 한다. 아이스하키는 체력 소모가 극심해 보통 20명의 선수를 4개 조로 나뉘어 1~2분 간격으로 끊임 없이 교체가 이뤄진다. 4교대가 이뤄지는 다른 팀에 비해 '맞교대'로 경기를 치러야 하는 광운대 선수들의 체력 소모는 2배가 된다. 격렬한 몸싸움을 펼치는 종목 특성상 아이스하키는 부상 선수가 많다. 광운대는 부상 선수가 두 명 이상 발생하면 대회 참가 자체가 힘들어진다.
어려움이 있지만 패기로 올 해 안에 연패 사슬을 끊겠다는 의지가 충만하다.
지난 1월에는 경기 침체 이후 실업 팀도 가지 못하는 캐나다 밴쿠버 전지훈련을 3주 일정으로 소화했다. 국내 선수 수급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2명의 '해외파'를 영입하기도 했다. 재미동포 박종수(20)와 일본 홋카이도에서 선수 생활을 하던 최영민(19)이 그 주인공.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나고 자라 캐나다 주니어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하던 박종수는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모국 빙판에 도전한다. 광운대 아이스하키 창단 멤버였던 아버지 박웅규씨는 4년 만에 부활하는 모교 아이스하키팀의 명예회복을 위해 아들을 귀국시켰다. 박종수는 아직 우리 말이 서툴고 낯선 환경에 완벽히 적응하지 못했지만 '아이스하키의 본고장'에서 기본기를 닦았다는 점에서 최 감독의 기대가 크다. 최영민은 홋카이도 도마코마이의 사카에고 선수로 활약하던 도중 최 감독의 권유를 받고 광운대행을 결심했다. 홍익초교에서 아이스하키를 시작한 최영민은 경성중 2년까지 골리로 활약하다 일본으로 이주, 공격수로 포지션을 바꾼 특이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최영민은 "밴쿠버 전지훈련을 계기로 팀이 하나로 뭉쳤다.'한번 해보자'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졸업하기 전에 연세대, 고려대를 반드시 꺾어보고 싶다"고 투지를 불살랐다.
최 감독은 "새로 시작하는 만큼 성적에 대한 부담은 없다. 첫 대회에서는 고교생으로 대학생에 대적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차근차근 팀을 성장시켜 4년 후를 내다본다는 각오다. 그러나 올해가 가기 전에 첫 승 목표는 반드시 이루고 싶다"고 '새 출발'에 나서는 출사표를 밝혔다. 재창단 한 광운대 아이스하키팀은 4월 개최 예정인 전국선수권에서 첫 선을 보인다.
김정민기자 goav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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