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와 윤리/문성원 지음/그린비 발행·400쪽·2만 원
2000년대 들어 인문학이 대중적으로 주목 받는 데는 우리사회 정치, 경제, 문화 현상을 인문학 개념들로 분석하는 전문가들의 칼럼도 한 몫 했다. 진중권, 엄기호, 문강형준 등 인문학자들은 촛불시위, 천안함 사태부터 '나는 가수다' 열풍까지 갖가지 사건과 현상들을 정신분석학, 철학, 미학 이론으로 해석한 칼럼을 썼고, 인문학 고전을 알기 쉽게 소개한 대중강연과 입문서가 인기를 모으며 인문학 대중화 현상을 추동했다.
문성원 부산대 철학과 교수의 저서 <해체와 윤리> (그린비 발행)는 서구 현대철학자들의 사상을 소개하며 이들의 사유를 우리사회에 접목시킨다. 칼럼보다는 학술적이지만, 넓게 보면 그 연장선에 있는 책이다. 문 교수는 "지난 10년 동안 현대사회의 변화를 철학적으로 포착하고 모색하는 공부를 해오면서 쓴 글을 모았다"고 말했다. 해체와>
책에서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학자는 레비나스다. 문 교수는 "외환위기 사태에서 보듯 신자유주의가 내세우는 자유는 자못 폭력적이고 자의적일 수 있는데, 이런 주장에 제동을 걸만한 내용이 레비나스 철학에 있다"고 말했다. 레비나스는 우리 삶은 처음부터 타자와 얽혀있기 때문에 자기 위주의 자유보다 타자와 맺는 책임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책은 레비나스의 '환대' 개념을 칸트와 비교하며 '신자유주의 횡포에 맞서 약자를 보호하고 돕는 것이 정의'(91쪽)라고 해석한다. "칸트의 환대는 상호적인 의무이지요. 쉽게 말해 이방인을 환대해야 우리도 낯선 곳에서 환대 받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에 반해 레비나스와 데리다는 조건 없는 환대를 말합니다. 정의의 의미를 환기하는 데 레비나스의 견해가 도움이 되지요."
문 교수는 환대, 이웃, 타자 등 레비나스가 사용한 주요 개념을 비롯해 데리다, 들뢰즈, 바디우 등 현대 철학자들의 주요 사상을 타자, 책임, 욕망, 정의, 주변성, 시간의 주제로 정리했다.
책은 이들 사상을 소개하며 우리 현실문제들을 대입시킨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의 분단체제론('어물어물 오지만 도둑 같이 오는 변화')을 들뢰즈ㆍ가타리의 '탈영토화' 개념과 비교하거나, 촛불시위와 68혁명을 비교하며 <앙띠 오이디푸스> 를 읽는 식이다. 문 교수는 "68혁명과 촛불시위는 기존 질서에 대한 반대와 변화에 대한 갈망을 강하게 드러냈으면서도 뚜렷한 청사진을 갖지 못한 운동이란 점에서 유사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68혁명은 소련에 대한 실망이 마오쩌둥의 중국에 대한 기대로 옮아갔다든가 반형식적인 히피적 삶을 추구하는 등 부분적인 지향모델이 있었던 반면, 촛불시위는 구체적 비전이 약하고 더 자주 점화되었다가 더 빨리 잠재적인 상태로 돌아갔다는 차이를 보인다. 책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를 통해 '윤리란 무엇인가'를 물으며 시작해 1980년대 이후 국내 철학담론 변화와 인문학의 유효성을 되묻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앙띠>
그는 "서구의 철학자들을 연구하지만 사회적 관심도 이들과 같을 수는 없다"며 "문제의식을 얻는 것은 우리 현실"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대의제 민주주의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갈등 같은 정치, 경제, 문화 관계망이 커지며 나타나는 문제들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나꼼수 현상도 이런 점에서 검토해 볼 여지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현상 역시 레비나스 철학에 기대 실마리를 잡아보려 합니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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