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삼(56) KEPCO 감독은 지난 14일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NH농협 2011~12시즌 프로배구 V리그 6라운드 서울드림식스-LIG손해보험전을 보지 않았다. LIG손해보험이 서울드림식스의 발목을 잡아준다면 팀이 2005년 프로 출범 이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지만 TV조차 켜지 않았다. 이날 경기에서 서울드림식스가 LIG손해보험에 2-3으로 지면서 KEPCO는 4강 준플레오프 진출을 확정했다.
"축하 문자로 4강 확정을 알았다"
신 감독은 16일 전화 인터뷰에서 "LIG손해보험전 뿐만 아니라 드림식스와 삼성화재전도 보지 않았다. 드림식스가 두 경기를 모두 이길 것으로 생각했다"면서 "드림식스가 져서 4강을 확정하기 보다는 우리가 시즌 최종전에서 LIG손해보험을 꺾고 자력으로 올라가길 희망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드림식스가 진 것은 휴대 전화의 축하 문자를 보고 알았다. 우리 손으로 4강을 이뤄내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신 감독은 2004년 홍익대 감독을 끝으로 지도자 생활을 접었다. 한국배구연맹(KOVO)에서 경기운영위원회 위원장과 팀장을 역임하면서 행정가로서 활동했다. 그는 지난해 3월 KEPCO로부터 감독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고 7년 만에 지도자 신분으로 코트에 돌아왔다.
"감독을 맡으면서 KEPCO가 살아야 한국배구가 산다고 생각을 했죠. 1위 승률이 80%, 최하위가 20%에 그치는 리그는 발전에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4강에 오르면서 국내배구의 저변을 확대시킨 것은 가장 큰 보람입니다."
산에서 해답을 찾다
이번 시즌 돌풍을 일으키던 KEPCO는 지난달 소속팀 선수 4명이 경기조작에 연루되면서 최대 위기를 맞았다. 경기 조작 파문 이후 7연패에 빠지면서 4위 자리도 위태로웠다.
함께 땀을 흘렸던 선수들이 검찰에 소환되는 상황에서 신 감독이 선택한 것은 등산이었다. 그는 KOVO에서 7년을 근무하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산에 올랐다.
"숙소에 있으면 머리가 깨질 것 같았어요. 수족이 다 떨어진 장수의 심정이었습니다. 선수들과 함께 숙소 근처에 있는 모락산을 오르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머리도 식혔습니다."
신 감독은 핵심 선수들이 구속된 위기 상황에서 "산은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다. 이번 경기조작 사건도 하나의 시련으로 보면 된다"고 선수들을 격려했다.
악으로 깡으로
신 감독은 독기를 품었다. 이제 남은 것은 악뿐이 없다고 했다.
KEPCO는 우여곡절 끝에 준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았지만 현대캐피탈이라는 '큰 산'을 넘어야 한다. 수니아스와 문성민, 최태웅, 이선규, 윤봉우 등이 버틴 현대캐피탈은 전력 누수가 없다. 반면 KEPCO는 경기 조작으로 빠진 4명 외에도 서재덕까지 무릎 부상으로 포스트시즌 출전이 불투명하다.
신 감독은 "지난해 5명을 은퇴시키고 10명으로 팀을 시작했다. 일본에서 실패했던 안젤코를 데려와 여기까지 왔다"면서 "쉽지 않은 싸움이지만 위기에서 승리를 한다면 더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끝까지 성원해준 회사와 팬들에게 보답하는 길은 코트에서 죽는다는 각오로 뛰는 것 밖에 없다. 장렬하게 전사한다는 자세로 준플레이로프를 준비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노우래기자 sport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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