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여덟 살 많은 언니는 내 문화적 성장에 절대적 영향을 미쳤다. 언니가 듣는 음악, 좋아하는 소설가, 패션, 영화...그밖의 모든 문화적 취향과 소소한 인물 평가 하나까지도 흡수됐는데, 딱 한 사람에 대해 동의할 수 없었다. 바로 윤수일이다. 언니는 윤수일 광팬이었다. 나는 어린마음에도 왜 우리 언니처럼 똑똑하고 문화적 소양이 높은 사람이 저렇게 외모로 승부를 거는 가수를 좋아할까 싶었다. 외모가 뛰어나면 실력은 별로 없을거라는 말도 안 되는 편견을 갖고 있었던 탓이다. 그래서 언니가 텔레비전에 나오는 윤수일을 심각하게 바라보며 “팬레터를 써볼까”라고 말했을 때는 정말 실망까지 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음악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역시, 우리 언니의 ‘선택’은 옳았다는 걸 알았다. 윤수일의 초기 히트곡(나나, 유랑자, 사랑만은 않겠어요)가 안치행 작곡이어서 그 많은 히트곡을 사실은 본인이 모두 만들고 연주했다는 것을 잘 알지 못했었다. ‘아름다워’,‘떠나지마’, ‘환상의 섬’, ‘아파트’, ‘토요일밤’, ‘제2의 고향’, ‘숲바다 섬마을’이 모두 본인 작사작곡이다.(‘황홀한 고백’은 작곡만)
뿐만아니라 초인종 소리, 오토바이 소리, 파도ㆍ갈매기 소리 등 적절한 효과음을 그 당시로는 정말 드물게 적절히 사용함으로써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들어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세련된 느낌을 준다. 게다가 환경이나 산업화 문제에도 관심을 갖는 등 주제의 폭도 넓다. 기타 실력도 대단해서 기타를 잘치는 우리 프로그램의 진행자도 윤수일 앞에서는 기타를 꺼내지 않는다고 한다.
내가 윤수일에게 또한번 감탄한 것은 몇 개월 전 나온 신보를 받아들었을 때다. 보통 예전에 유명했던 가수들이 신보를 들고나오면 기대를 안 한다. 오랜 공백기간을 극복하지 못하고 엉뚱한 방향으로 타협을 하거나, 자기 세계에 빠져 대중성을 상실한 자기만족형 음반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윤수일은 모던락 ‘라디오 러브’를 선보였다. 20대 초반의 순수한 청년이 사랑에 빠진 것처럼 힘을 빼고 로맨틱하게 부른 창법이나 화려한 기타연주로 포인트를 주면서도 전체적인 멜로디라인이 쉽고 착하다. 가요를 들으면서 ‘착한 음악’이구나 싶은게 얼마만인가! 아, 윤수일, 대단하구나!싶었다.
몇 년전 선보인 비교적 신곡이랄수 있는 ‘터미날’이 짙은 음색, 짙은 멜로디라인의 중장년층 음악이라면 이번 ‘라디오 러브’는 모든 세대가 사랑할 수 있는 편안한 음악이다. 지금 윤수일의 나이와 지난 시간의 역사를 생각해보면 쉽지 않는 내공이다. 그만큼 노력하고 감을 잃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 물론 윤수일 하면, 그야말로 국민가요랄 수 있는 ‘아파트’를 빼놓을 수 없다.
지금까지도 대표적인 응원가여서 전주만 들어도 어깨가 들썩이는데, 가수로 태어나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힘차게, 한마음으로, 즐겁게 자신의 노래를 불러준다는 것은 엄청난 행복일 것 같다. 그것이 또 윤수일 음악의 성취이자 힘이다. 우리나라 가요계가 너무 젊은 사람만 좋아한다고 대중을 원망하지만, 사실 지나간 명성에 집착해 노력하지 않거나 대중적 감각을 잃어버리는 뮤지션들의 탓도 있을게다. 그래서 윤수일은 지금 후배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우리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늦은 시간인데도 연습실로 향하는 윤수일을 보며, 그 옛날, 편견을 갖고 싫어했던 게 살짝 미안했었다.멋있게 나이들고 있는 현역 가수 윤수일의 다음 신곡도 기대가 된다.
조휴정ㆍKBS해피FM 106.1 ‘즐거운 저녁길 이택림입니다’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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