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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장준하 선생의 ‘돌베개’를 파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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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장준하 선생의 ‘돌베개’를 파주에

입력
2012.03.16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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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참석했던 추모행사 중에서 잊을 수 없는 장면이 있다. 하나는 6ㆍ25전쟁 때 임진강 전투에서 수많은 사상자를 낸 영국군 글로스터대대의 추모행사였고, 또 하나는 경기 광탄 나사렛공원묘지에서 가졌던 장준하 선생의 추모행사였다. '역사에 눈을 감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했는데 자치단체장이 처음으로 참석했다니 그동안의 무심에 가슴이 아팠다.

장준하 선생과의 인연은 중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상사에서 출판된 <돌베개> 책은 세로쓰기여서 읽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나 흥미진진한지 잠시도 내려놓을 수 없었다. 일본에 뺏긴 나라를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목숨을 걸고 임시정부를 찾아가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아주 생생하게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책에서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장면은 일본군 군의관이 마취제도 쓰지 않고 장준하 선생의 엄지손가락을 다섯 번이나 절개했을 때다. 그는 "조국의 아픔을 손으로 앓으면서 나는 이것이 내 운명인가 하고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그것은 나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그보다 더한 치욕을 안고 참아야 하는 나라의 운명과도 연결되는 것"이라고 했다. 제호 <돌베개> 의 사연도 깊었다. 성경에 나오는 야곱의 돌베개를 뜻하며, 결혼 1주일 만에 입대하면서 아내에게 일본군 탈출을 알리는 편지 암호였다.

이러한 조국 독립의 염원에 힘입어 우리나라는 광복을 맞았다. 기쁨도 잠시, 6ㆍ25전쟁으로 인해 조국은 분단되었고, 사회는 혼란에 빠졌다. 이런 가운데 선생은 <사상계> 라는 잡지를 창간하여 지식인의 등대 역할을 했으며,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고자 온몸을 불살랐다. 또한 분단된 조국의 평화통일에 헌신했다. 장준하 선생은 만인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애국자요 사상가다. 한국인 최초로 막사이사이상(언론문화 부문)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 8월 17일, 비가 오는 가운데 열린 추모 행사에는 미망인 김희숙 여사를 비롯해 미국에 사는 유족들이 처음으로 참석해 눈시울을 붉혔다. 이부영 전 국회의원 등 많은 동료, 후배가 함께 한 가운데 매우 엄숙하게 진행되었으며, 못다 이룬 꿈을 이으려는 비장한 각오도 느껴졌다. 이곳에서 나는 장준하 선생의 묘를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이장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살아생전 못다 이룬 구국의 일념이 아무 연고도 없는 파주에 묻힌 것은 또 다른 사명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선생께서 가장 강조했던 말은 '못난 조상이 되지 말자'는 것이었다. 파주는 분단국가 접경도시며 안보의 보루다. 또한 미래 통일한국의 관문이자 중심지가 될 한반도의 허리다. 이곳에 나라를 되찾아낸 선열들의 족적과 정신이 뿌리내리는 것은 어쩌면 매우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김문수 경기지사 등 주변의 많은 분들과 상의하여 장준하 선생을 파주 통일동산에 모시기로 했다. 장남 장호권 씨와 유족들, 장준하선생기념사업회에서도 모두 반겼다. 파주 통일동산 주변은 연간 200만 명이 찾는 파주의 대표적 관광지다.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이곳에 선생의 묘역을 조성할 예정이다. 차츰 그분의 정신과 애국심을 기릴 수 있는 시설도 만들고 싶은 바람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이름조차 생소한 장준하 선생의 삶은 이렇게 되살아나고, 미래세대에게 투철한 국가관을 심어주는 구심점이 될 것이 분명하다.

역사적으로 일제강점기를 거쳐 6ㆍ25전쟁, 현대화에 이르기 까지 흠이 없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장준하 선생은 맑은 얼굴만큼이나 깨끗하고 올곧은 인생을 살다 간 대표적인 인물이다. 올해는 장준하 선생이 돌아가신지 37년째 되는 해다. 일찍이 김수환 추기경은 장준하 선생의 죽음에 대해 "별이 떨어진 것이 아니라, 보다 새로운 빛이 되어 우리의 앞길을 밝혀주기 위해 잠시 숨은 것뿐"이라고 했다. 죽어서도 살아있는 장준하 선생의 애국애족의 정신, 의로운 기상은 우리 파주에서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다.

이인재ㆍ경기 파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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