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책 이야기가 아니다.
두 마을이 있다. 마을은 강을 사이에 두고 동서로 마주보고 있었는데 가운데는 작은 다리가 놓여 있었다. 사람이 건널 수 없을 만큼 아주 작고 엉성한 다리였다. 누군가 대충 지푸라기 엮어서 형식상 얹어놓은 그런 모양새였다. 볼품없는 게 차라리 징검다리만 못했다. 해질 무렵 눈망울이 아주 큰 새끼노루가 다리 주변을 서성거렸다. 돌아갈 숲을 잃었는지 아니면 길을 잃었는지, 혹은 엄마를 잃었는지 강 건너를 바라보며 안절부절 못한다. 하늘에는 철새들 줄지어 날고 붉게 노을이 물든 강변은 고요하며 아름다웠다. 서서히 어둠이 드리워지자 하나 둘 새어 나오는 마을의 불빛은 어느새 별빛이 되었다.
아침이 되자 마을 사람들은 분주해졌다. 동쪽과 서쪽 마을은 비슷하면서도 매우 다른 형태로 움직이고 있었다. 동쪽마을 사람들은 마치 무리 지어 다니는 초원의 야생동물 마냥 자유로우면서도 들떠있었다. 그러나 강자가 나타나면 뿔뿔이 흩어지거나, 숨어버리는 본능적 생존방식에 충실해 보였다. 한편 서쪽마을 사람들은 행동은 일사불란하나 표정이 없고 그 누구도 크게 웃지 않았다. 동물원에 갇혀 야성을 잃은 맹수와 같았다.
동쪽마을 사람들에게는 이상한 습성이 하나 있다. 5년 마다 새로운 촌장을 뽑게 되는데 누군가 촌장 후보가 되면 그렇게 서로 할퀴고 물어 뜯는다. 혐오하고 증오하고 저주하다가도 결국엔 박수 치며 열광한다. 그렇게 전쟁 같은 의식을 치르고 나서도 사람들은 후보 중에 가장 이상한 사람을 지도자로 뽑고 환호한다. 지금의 촌장은 마을에서 가장 부자가 되었다. 촌장이 되기 전, 풍요로운 삶을 약속해 놓고는 몰래 자신만을 위한 땅을 넓혀와 역대 촌장 중에 가장 부유한 사람이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촌장의 땅이 넓어 질수록 자신들의 땅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야 알았다. 그래도 그들은 전혀 게의 치 않고 또 지금의 촌장과 비슷한 촌장을 뽑겠다고 난리법석이다. 이들은 새로운 촌장을 기대하면서도 언제나 선택은 전혀 다르게 한다. 전혀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상한 유전자를 지닌 사람들이다. 그러면서 언제나 후회하고 한 숨 쉬기에 바쁘다. 하여튼 이러한 순환 속에서 늘 쫓기듯 바쁜 사람들이 아옹다옹 살아가고 있는 곳이 동쪽 마을이었다.
서쪽마을 사람들은 동쪽 마을 사람들의 허세를 싫어한다. 이들에게는 오랫동안 한 사람만이 촌장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모두 그의 말과 행동은 무엇이든 당연하게 생각한다. 부와 땅은 중요한 대화거리가 되지 않으며 별다른 변화나 투쟁의 기미도 없다. 다들 숨죽이고 정해진 구역에 알맞게 살아가고 있다. 촌장의 존재는 베일에 가려있어 항상 말과 행동이 조심스럽고 예민하다.
이 두 마을은 사실 한 부락이었다. 예전에는 형제 자매들처럼 살면서 자유롭게 오가며, 서로 같은 말을 쓰고 같은 옷을 입고 다녔다. 그런데 어느 날 누군가 나타나 두 마을 사이에 인공으로 강을 만들고 달랑 다리 하나를 놓아 두 마을을 동서로 구분 지었다. 사람들은 낯선 그 이방인에게 대항할 힘이 없었다.
그때부터 마을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강 건너 저쪽으로 건너갈 생각을 안 하게 되었다. 언젠가부터 이 다리 건너가기를 포기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마을에 머물러 있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되면서 촌장도 따로 뽑고 마음마저 나누어져 버렸다. 그리고 그것이 이들의 역사가 되었다. 엉성한 다리는 점점 부식되고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갔다. 아무도 반대쪽 마을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가끔 아이들이 강가에 놀러 나왔다가 건너편에 저와 비슷한 아이들이 있는 것을 보고 고개만 갸우뚱 하다가 집으로 얼른 돌아간다. 그곳은 위험한 곳이라고 어른들이 일러주었기 때문이다.
동쪽 마을의 한 아이가 몰래 강변으로 나왔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왜 노루가 건너편을 바라보고 있었는지. 그리 멀지 않은 저곳이 왜 위험한 걸까. 그런데 도대체 이 다리는 누가 놓은 것일까. 왜 이렇게 허술하게 지어놓고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 것일까. 아무도 답해 주지 않았다. 호기심이 많은 아이는 강가에 종이 배를 띄웠다. 그리고 그 안에 편지를 써 넣었다. 멀리서 촌장을 뽑기 위해 열광하는 사람들의 함성 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나는 여전히 그 강가에 서 있다.
박근형ㆍ연극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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