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사건에 대한 재수사를 천명했다. 사건 당사자의 구체적 진술이 잇따르는데도 이런 저런 이유로 미적거리던 태도를 비로소 털고 일어선 것은 다행이다. 무엇보다 총선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수사시기를 저울질한다는 얘기는 말이 되지 않는다. 뒤집으면 평소 검찰이 사건 처리에 정치적 고려를 중시해왔다는 얘기가 된다. 검찰이 불신 받는 가장 큰 이유가 이런 식의 정치적 태도다. 물론 유ㆍ불리에 따라 정치수사 비판과 성역 없는 수사 촉구로 표변하는 정치권의 이중적 태도 또한 문제이긴 마찬가지다.
장진수 전 총리실 주무관을 20일 소환키로 한 검찰은 그의 진술에서 나온 증거 인멸 부분에 일단 초점을 맞추겠지만, 지휘계선을 따라 청와대 핵심으로까지의 수사 확대는 피할 수 없는 수순이다. 당장 장 전 주무관이 증거 인멸을 직접 지시했다고 폭로한 최종석 전 청와대 행정관이 1차 수사 대상이 될 것이고, 그에게 대포폰을 주고 증거 인멸에 개입한 정황이 있는 바로 윗선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도 수사 대상에 오를 수밖에 없다.
나아가 이 전 비서관 정도면 ‘감히’ 검찰과 수사 수위를 조율할 정도의 직급과 직책이 못 된다는 점에서 정동기 당시 민정수석을 비롯한 민정팀 지휘계선 전체에 대한 수사도 불가피하다. 사건 당시 더 윗선의 의혹까지 무성하게 제기됐으나 그나마 이 정도가 검찰이 파고들어야 할 최소한의 재수사 범위다. 이마저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재수사는 더욱 엄청난 저항에 부딪쳐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가 될 것이다.
재수사의 또 다른 중요한 줄기는 검찰 내부다. 이 사건이 더욱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장 전 주무관의 폭로에서 오랫동안 짐작만 해온 청와대 권력과 검찰의 유착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때문이다. 수사결과를 질타한 당시 검찰총장까지는 그렇다 쳐도 최소한 당시 서울중앙지검장 정도는 수사 조율에 개입했거나 알고 있었다고 보는 게 상식에 부합한다. 재수사에 나선 검찰이 수치와 모멸을 씻어내기 위해 뭘 어떻게 해야 할지는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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