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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 원전 사고 은폐/ 중대사고 나도 '대면 보고'만 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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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 원전 사고 은폐/ 중대사고 나도 '대면 보고'만 고집

입력
2012.03.15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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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2일 부산 기장군 고리원자력본부. 반핵울산시민행동과 반핵부산시민대책위원회 활동가들은 들뜬 마음으로 고리본부를 찾았다.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은 지역 시민단체들의 줄기찬 요구에 이날 처음으로 '고리1호기 계속운전 안전성 평가보고서'를 공개하기로 했다. 그러나 보고서를 펼쳐본 활동가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모두 9권, 5,500여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전문자료는 보안상 이유라며 서류마다 포스트잇이 붙어 내용을 제대로 알아볼 수도 없었다. 심지어 인터넷에 게재된 내용까지 확인할 수 없었고, 복사나 촬영은 물론 기록까지도 못하게 했다.

최근 발생한 고리원전 1호기 전원공급 중단 사고가 한 달 넘게 은폐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한수원의 경직되고 폐쇄적인 조직문화, 투명성이 결여된 독점 공기업의 고질인 운영체계가 자리잡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한수원은 2001년 한전 계열사로 분사한 뒤 고리ㆍ영광ㆍ울진ㆍ월성에 세워진 21개 원전과 14개 양수ㆍ수력발전소를 독점 운영하는 공기업이다. 공직 관료체계 특유의 경직성이 강한 조직이면서, 위험물질을 독점 관리한다는 이유로 운영ㆍ관리체계가 극히 폐쇄적이다. 이번 사고 은폐 경위를 보면 한수원의 정보 공유ㆍ보고ㆍ관리체계가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 드러난다. 고리1발전소장과 실장, 팀장 등 간부들은 사고가 발생한 지난달 9일 자체 수습 직후 사고발생 사실을 상부에 보고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한 원자력기관 관계자는 "사고발생시 하위직에 업무 부담이 비정상적으로 가중되는 경직된 구조가 개선되지 않으면 사고 은폐 시도는 또 일어날 수 있다"며 "내외부적으로 폐쇄성이 강한 원전 특성상 하위 결정권자들 선에서 입을 닫으면 상부에서 사고 경위를 찾아내기 힘든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한수원 조직의 경직성은 지난 13일 원자력안전위원회 발표에서도 드러난다. 사기업의 경우 통신보고가 일상화돼 있지만, 한수원은 이번과 같은 중대 사고에 대해서도 '대면 보고'만 고집했다. 에너지정의행동 김복녀 실장은 "한수원 측에 정보 공개를 요청할 때마다 '국책사업이고 안전에 문제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하기 일쑤였다"며 "이번 사태는 사고 사실을 숨겼다가 발각된 일본 도쿄전력의 상황과 유사한 '한수원 스캔들'" 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경우 2002년 한 전기회사 직원이 도쿄전력이 17년 동안 원자력시설에서 생긴 원자로 균열 등 각종 사고를 감춰왔다고 폭로, 일본 정부가 감사를 벌인 결과 이 주장은 사실로 밝혀졌고 도쿄전력의 회장과 사장 등이 전격 사임했다. 원전 17기 가운데 12기의 가동이 중단됐다. 도쿄전력이 추진하고 있던 차세대 원전사업 '플루서멀' 계획도 중단됐다.

김종경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 보듯 정확하고 빠른 정보 전달이 사후 처리과정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하게 한다"며 "고리원전 1호기 사건은 한수원의 조직문화와 보고ㆍ관리ㆍ운영체계에 얼마나 큰 문제가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정부의 방재 대책도 주로 시설물 보강 등 하드웨어적인 부분에 치중돼 있다"며 "지금부터라도 인력 및 조직문화 개선에 대한 투자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강성명기자 sm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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