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 원전 1호기 간부들이 전력공급 중단사고를 은폐한 사실은 확인됐지만, 아직도 석연치 않은 부분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단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1년을 앞두고 일이 커지는 게 두려워 현장에서 무마하려 했다"는 쪽으로 결론이 모아지고 있지만, 어떻게 한달 동안이나 쉬쉬할수있었는지, 정말로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본사는 이 사실을 몰랐는지 의혹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일단 사고가 터진 이후 상황전개를 한수원측과 고리1호기 직원들의 말을 토대로 재구성해보자. 지난달 9일 오후8시34분. 고리 1회기의 외부전원공급이 갑자기 중단됐다. 직원들은 비상디젤발전기를 작동시키려 했지만 이마저도 작동하지 않았다. 이 상태가 장기화된다면 치명적 안전사고가 우려되는 상황. 다행히 12분 뒤 전원공급은 재개됐다.
직원들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매뉴얼대로라면 한수원 본사와 지식경제부, 원자력위원회 등에 보고해야 했지만 모두가 후쿠시마 원전 1년을 앞둔 상황에서 원전안전문제에 대해 극도로 예민했던 상황이었다. 만약 보고를 하고 사고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어떤 형태로든 조사와 문책이 뒤따를 수 밖에 없었다.
문병위 발전소장은 "보고하지 말고 덮자"고 결정했다. 원자력위원회에서 나온 감독관은 이미 퇴근했던 터였고 12분만에 수습이 됐으니 비밀유지가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식당에서 우연히 사고 사실을 전해들은 부산시의회 김수근 의원을 통해 은폐극은 드러나게 됐다.
하지만 정말로 문 소장 선에서 은폐결정이 났는지는 의혹이 남는다. 그는 16일 원자력안전위원회 조사에서 "내가 전적으로 결정했다. 윗선 지시는 없었다"고 진술했지만 이런 중대 사안을 말단직원도 아닌 간부가 숨기기로 결정했다는 것, 설령 본사는 아니더라도 직상급자인 정영익 고리원전본부장(현 월성원전본부장)에게조차 보고하지 않은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게 일반적 시각이다. 정 본부장 역시 "(3월12일 이전까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고 말했지만, 김수근 부산시의원은 "고리원전 최고책임자인 본부장조차 몰랐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김 의원이 고리원전 측에 사고사실을 문의한 건 지난 8일. 하지만 고리원전 측이 김종신 한수원 사장에게 상세보고를 한 건 11일이다. 사흘의 공백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시의원이 사고사실을 물어왔다면, 이미 사태가 커진 것인데 그 때라도 즉각 본사에 알리는 게 상식. 때문에 한수원 본사도 11일 이전 이미 보고를 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본사 차원에서 늑장 보고 또는 은폐에 동참한 것이 되기 때문에 파장은 일파만파로 커지게 된다.
지난 6일 정 본부장과 문 소장은 월성본부장, 본사 위기관리실장으로 각각 좌천성 전보 조치된 것도 주목할 부분. 일각에선 '정전사고 책임을 물은 것 아니냐'며 의구심을 표시하지만, 한수원 측은 "앞서 발생한 납품비리에 대해 책임을 물은 것일 뿐"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원자력위원회 관계자는 "사고가 났는데도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원전 운전일지에조차 버젓이 '정상 가동'이라고 써 놓은 걸 보면 대체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종한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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