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원전 1호기의 정전 및 은폐 사건은 고도의 주의를 요하는 원전현장의 느슨한 위기대응 태세를 그대로 드러냈다.
이번 사고는 원자력 안전에서 인적 요인의 비중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었다. 첫째는 부주의로 빚은 실수다. 외부전력을 공급하는 2개 선 가운데 하나가 끊긴 상태에서 나머지 하나마저 차단된 것은 작업자의 실수 탓이었다. 2개 선이 살았을 때보다 더 주의를 기울여 마땅했다. 둘째는 작업지침에 꼼꼼히 따르지 않은 해이한 자세다. 외부 전력 공급이 차단될 경우 대신 전력을 공급하는 비상발전기 두 대 가운데 하나는 점검을 위해 분해한 상태였다. 나머지 하나가 원인을 알 수 없는 고장으로 작동하지 못했지만, 외부 전원과 비상전원을 동시에 점검하지만 않았어도 정전은 막을 수 있었다. 셋째는 무사안일로 기운 현장 분위기다. 전력공급 계통의 최후의 안전판인 수동 비상발전기를 가동하는 대신 외부전력 회복을 기다렸다. 이때 이미 사고를 가벼이 보고, 덮고 가는 게 편하다는 내부적 공감이 작용했다.
이런 자세는 조직적 은폐 기도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한 달이 넘도록 한국수력원자력과 지식경제부,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사고에 대해 아무런 보고를 받지 못했다. 근무자 100여명이 굳게 입을 다문 데서 확인된 폐쇄적 조직문화도 놀랍다. 원자력안전위 주재관의 철수도 공교롭지만, 남아 있었더라도 24시간 근무가 아니어서 야간 사고를 파악하긴 어려웠다.
일련의 사고와 은폐는 설비 문제보다는 운용 인력의 부주의와 과실이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일깨웠다. 현장 근무기강을 다잡고 조직문화를 일신해야만 원자력 안전을 기약할 수 있다. 고리원전을 포함한 전체 원전과 한수원, 원자력안전위 등 모든 관련 조직의 대대적 각성을 촉구한다.
한편으로 2중3중의 안전장치를 확인, 안심이 되는 측면도 있다. 고리원전의 부적절한 위기 대응의 일정 부분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크게 민감해진 여론이 관계자들에 지운 중압감과 무관하지 않다. 이런 중압감을 더는 것 또한 적절한 위기대응 태세를 끌어내는 데 불가결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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