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차기 지도자 중 한 명으로 부상하던 보시라이(薄熙來ㆍ63) 충칭(重慶)시 서기가 결국 해임됐다. 측근인 왕리쥔(王立軍) 충칭시 부시장의 미국 망명 시도와 관련해 책임을 물은 것이지만 그가 주요 정파 중 하나인 태자당(太子黨ㆍ혁명 원로 및 고위 간부 집안 출신)의 핵심 인물이라는 점에서 지도부 교체를 앞두고 중국의 권력 투쟁이 본격화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관영 신화통신은 15일 "당 중앙이 충칭시 간부의 주요 직무 등을 조정했다"며 "장더장(張德江ㆍ66) 국무원 부총리가 충칭시위원회의 위원과 상무위원, 서기를 겸한다"고 보도했다. 신화통신은 또 "보 전 서기는 더 이상 충칭시 서기와 상무위원, 위원을 겸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보 전 서기는 당 중앙 정치국 위원직만 유지하게 된 것으로 파악된다.
신화통신은 왕 부시장도 해임됐다고 전했다. 왕 부시장의 후임엔 칭하이(靑海)성 부성장이자 공안청장인 허팅(何挺ㆍ50)이 임명될 것으로 알려졌다.
리위엔차오(李源潮) 중국공산당 중앙조직부장은 이날 충칭시 간부회의를 소집하고 이 같은 결정을 알렸다. 그는 "이번 조정은 당 중앙이 현 시국의 문제점을 신중하게 고려한 뒤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국무원 부총리를 역임한 보이보(薄一波)의 아들인 보 전 서기는 2007년 충칭시 서기를 맡은 뒤 '창홍다헤이'(唱紅打黑ㆍ홍색 문화를 고취하고 폭력ㆍ부패 등의 사회악을 척결한다) 를 기치로 내걸어 주목 받았으며 성장보다 분배를 강조해 대중의 인기도 얻었다. 그러나 왕 전 부시장이 지난달 쓰촨(四川)성 청두(成都) 주재 미국 영사관에서 망명을 시도한 것으로 드러난 뒤 정치적 궁지에 몰렸다.
보 서기의 해임에 앞서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왕 전 부시장을 '반역자'로 낙인 찍고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14일 "충칭시위원회와 시 정부는 반성해야 한다"고 질책하면서 정치적 파장을 예고했다. 후 주석과 원 총리의 정파는 공산주의청년당이다. 이날 충칭시 간부 회의를 소집한 리 부장도 공청단의 대표주자이다.
이에 따라 공청단이 태자당을 겨냥, 본격적인 권력 투쟁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태자당의 중심이 후 주석으로부터 권력을 넘겨 받을 시진핑(習近平) 부주석이라는 점에서 중국의 신ㆍ구 지도부 교체가 순탄치 않을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그러나 보 전 서기가 급진적인 방식으로 분배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마오쩌둥(毛澤東) 전 주석을 신봉하는 등 극좌 행보를 보인 것에 대한 중앙의 응징이라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실제로 보 전 서기는 충칭에 7층 높이 마오 전 주석의 동상을 세우는 등 문화대혁명의 악몽을 연상하게 할 정도로 튀는 행보를 보였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이다. 베이징의 한 외교 소식통은 "점진적 변화를 선호하는 집단지도체제의 당 중앙이 보 전 서기의 과격한 행동을 좌시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 총리가 전날 "문화대혁명과 같은 역사적 비극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한 것도 극좌 성향의 발호에 대한 반감을 보여준 것이란 설명이다.
한편 보 전 서기가 친한파였던 데 비해 장 부총리는 옌볜(延邊)대 조선어학과와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한 북한통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도 막역한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장 부총리는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의 상하이방으로 분류된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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