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기고/ 구직자 노조와 단체교섭의 딜레마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기고/ 구직자 노조와 단체교섭의 딜레마

입력
2012.03.15 12:04
0 0

최근 청년유니온14에 대한 서울시의 노조설립신고 반려처분이 위법하다는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서울시는 이 판결에 대해 항소해 서울고법에 계류 중이다. 구직자가 노조를 조직하거나 가입할 수 있는지 여부가 쟁점이었다. 구직자가 노조법상 근로자인지 여부는 대법원에서 몇 차례 다루어져 왔으나 아직까지 확실하게 정리되어 있지 않으며 판시내용도 다소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행정법원은 2004년 서울여성노조 사건 대법원 판결을 인용했다.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헌법상 노동3권 보장의 필요성이 있는 한' 일시적으로 실업상태에 있는 자나 구직자도 노조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작년 영일만신항 항운노조 사건에서 노조법상 근로자는 '원칙적으로 특정한 사업주에게 고용되어 현실적으로 취업하고 있는 자'라고 했다. 다만, 이 사건에서 항만하역 조합원의 근로제공의 특성을 볼 때 예외적으로 조합원 자격을 인정할 특별한 사정이 있으며 일반적인 실업자나 구직자와는 구별된다고 했다. 즉 일반적인 실업자나 구직자가 당연히 노조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 것이다.

실업자나 구직자가 노조법상 근로자 인지는 결국 교섭 상대방이 없는 자가 노조를 조직하거나 가입할 수 있는지 여부가 쟁점이다. 대법원은 헌법상 노동3권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고 하며 단체교섭권을 노동3권의 중핵적인 권리로 보고 있다. 즉, 노동3권은 단체교섭을 통한 협약자치를 목적으로 하며, 이를 통해 근로조건의 유지, 개선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이에 설립신고증이 교부된 노조에게는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이 자동적으로 부여되며, 민ㆍ형사상 면책, 조세 면제,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 등 다양한 법적 혜택이 주어져 사용자에 대한 교섭력을 높이고 대등교섭이 가능토록 하고 있다.

이 점에서 헌법 제33조의 단결권은 헌법 제21조의 결사의 자유와 본질적으로 다르며 사용자를 상대로 단체교섭을 할 수 없는 자는 헌법상 결사의 자유에 의한 일반 결사체를 통해 활동하는 것이 타당하다. 결론적으로 실업자나 구직자는 원칙적으로 노조법상 근로자에 해당되지 않는다. 다만, 예외적으로 노조법상 근로자로 인정할 수 있을 것인데, 앞서 언급한 항운노조 조합원이나 건설근로자 등이 이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이러한 근로특성을 가진 자들에게는 조합원 자격을 인정해 이미 항운노조나 건설노조 등에 대해 노조설립신고증이 교부된 상태이다.

2004년 대법원 판례 역시 신중한 해석이 요구된다. 원심기록을 보면 25명의 조합원 중 구직자는 3명에 불과했다. 따라서, 이 판결을 근거로 모든 실업자나 구직자도 당연히 노조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하는 것은 논리 비약이다. 구직자의 노조법상 근로자성 인정 문제는 청년유니온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법리적인 타당성과 노사관계 질서에 미치는 영향 등이 신중하게 검토되어야 하고 경우에 따라 노조법 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재편이 수반될 수 있는 쉽지 않은 주제이다. 과거 노사정위원회에서도 3차례나 논의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은 이러한 어려움을 잘 보여준다.

청년유니온이 청년실업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열악한 근로환경에 있는 청년들의 권익증진을 위해 애써온 점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한다. 실제, 30분 피자배달제나 커피전문점 주휴수당 문제 등을 이슈화해 고용부가 이에 대한 개선대책을 마련하는데 기여한 바 있다. 청년유니온의 고민은 정부의 고민과 같은 셈이다.

하지만 이런 활동이 반드시 노조를 통해서만 가능한지는 의문이다. 실제로 청년유니온은 노조로서 활동하는데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 청년유니온 측은 전경련, 경총, 프랜차이즈 본사 등을 지목하고 있으나 이들 단체는 단체교섭의 상대방인 사용자가 아니다. 이러한 단체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이슈들을 제기하고 청년고용 촉진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는 데는 오히려 헌법상 결사의 자유에 따른 일반 결사체나 사회단체 형태가 더 적합할 수 있다.

김성호 고용노동부 노사관계법제과 과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