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과 여름이면 성안의 사람들은 짝을 지어 한양 도성 둘레를 따라 한 바퀴 돌면서 경치를 구경하곤 한다. 이를 일러 ‘순성’이라고 부른다.”
조선 후기 실학자 유득공은 200여 년 전 사람들의 성곽 길 걷기 열풍을 ‘경도잡지’에 이같이 적었다.
최근 주5일 수업이 시행되면서 봄 바람이 솔솔 부는 주말이면 아이들과 손 잡고 한양도성 성곽길 18.6km를 따라 시간여행을 떠나는 가족 상춘객들이 늘고 있다. ‘순성’의 전통이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민들과 600년을 함께 해온 한양 성곽은 이 곳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넉넉하고 아름다운 품을 열어준다.
한양 성곽 역사는 태조 4년(1395) 도성축조도감의 명을 받은 정도전이 서울의 내사산(內四山)인 동쪽의 낙산, 서쪽의 인왕, 남쪽의 목멱(남산), 북쪽의 백악(북악산)을 실측하고, 이 네 산을 연결하는 5만9,500척의 성터를 결정하면서 시작됐다. 이듬해 정월부터 11만8,000명이 동원돼 시작된 공사는 1396년 숭례문을 시작으로 다음해 4월에는 흥인문의 옹성이 완공되며 끝났다. 세종 4년에는 전국에서 약 32만2,000여명의 인부가 동원돼 흙으로 쌓은 성곽 일부를 모두 돌로 바꿨고, 숙종 때는 5년에 걸쳐 대대적인 수축공사가 이뤄졌다. 그러나 한양 성곽은 일제시기인 1915년 근대화 개발에 방해가 된다는 명분으로 크게 훼손됐다. 그 뒤 서울시가 1975년 복원계획을 수립해 2.570km를 복원했으며, 현재 5개 구간 11.56km의 구간이 한창 복원 중에 있다.
성곽이 끊어진 탓에 과거처럼 하루 일정으로 성곽을 다 돌아보기는 벅차다. 그러나 낙산과 인왕산, 남산과 북악산의 유적과 볼거리, 맛집 탐험 등 몇 차례에 걸쳐 ‘순성’에 나선다면 그 재미는 배가 된다.
산의 형세가 낙타를 닮았다고 해서 낙타산으로 불리다 이를 줄인 낙산에 올라보자. 흥인지문 건너 동대문성곽공원에서 시작되는 산책로를 따라 걷다 만나게 되는 낙산 성곽길은 태조부터 숙종 때까지 시대별 축성 기술을 가장 잘 살펴볼 수 있는 구간이다. 젊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사랑 받는 낙산 공원의 멋진 야경은 낙산 성곽길 순례의 알짜배기 덤이다.
내사산 중 풍수지리적으로 우백호를 상징하는 인왕산의 성곽 구간은 조선 중기 화가 겸재 정선이 단골 소재로 삼을 만큼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구간이다. 인왕산을 오르는 등산로는 여러 곳이 있지만 성곽을 제대로 보기 위해선 북악산 창의문 앞에서 길을 건너 언덕길을 오르는 것을 추천한다. 종주하는데 약 2시간이 걸리는 인왕산 구간은 일부 복원공사 때문에 5월27일까지 우회로를 이용해야 한다.
서울의 한 복판에 있는 남산에도 올라보자. 복원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숭례문을 시작으로 남산 가는 길에도 성곽의 한 자락이 눈길을 끈다. 조선시대 전국의 봉수가 전달되던 중앙 봉수대인 남산 봉수대로 향하는 가파른 길을 숨가쁘게 오르다 보면 목멱산 성곽이 조금씩 자태를 드러낸다.
2007년 4월 전면 개방된 북악산 코스는 40여 년 간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돼 원형이 가장 잘 보존 된 구간으로 평가 받는다. 넉넉잡아 2시간 걸리는 북악산 코스는 출발지에 따라 와룡공원 말바위 안내소, 숙정문 안내소, 창의문 안내소에서 오르는 세 가지 코스가 있다. 창의문 안내소 구간은 급경사 구간이 이어져 노약자나 어린이가 오르기엔 다소 힘이 든다. 가족 나들이라면 말바위 안내소나 숙정문 안내소에서 오르는 구간을 택하면 좋다. 그러나 세 코스 어디를 이용하든 북악산의 정상인 백악마루에 오르면 맑은 날에는 멀리 관악산까지 살펴볼 수 있다.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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