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텃밭에서 가꿔 바로 먹던 채소 맛을 잊을 수가 없어요. 상추며 배추, 호박, 고추, 쑥갓, 가지까지 2평 남짓 자투리 땅이 4인 가족의 풍성한 저녁식사를 만들어줬죠.”
15일 옥상농부학교를 찾은 주부 이진숙(52)씨는 “여러 번 텃밭을 가꿔보려고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해 이곳에서 텃밭 가꾸는 법을 체계적으로 배워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저녁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3가 문래예술공장 2층 강당에서 열린 옥상농부학교 입학식. 50대 주부부터 20대 직장인까지 18명의 다양한 사람들이 문래도시텃밭 공동체가 주관하는 옥상 텃밭 가꾸기를 배우기 위해 모였다.
문래도시텃밭 공동체는 문래동에 입주한 예술가들과 지역주민들이 ‘철공소로 가득 찬’ 이 지역을 도시의 농촌으로 탈바꿈시켜보는 취지로 결성한 지역단체. 철공소 수 십여곳이 밀집해 있는 곳이니 화가 음악가 작가 등 예술인들로서는 동네를 인간미 넘치는 곳으로 변화시켜 보려는 욕구를 느낄만하다.
마침내 지난해 5월 문래동 3가 영동스테인리스 건물 옥상(120평)을 어렵사리 얻었다. 나무와 흙을 들여와 여기에 텃밭을 일구기 시작했다. 200여 회원들과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동참했다. 텃밭에서 키운 배추ㆍ무ㆍ당근ㆍ대파 등으로 김치를 담가 나누기도 하고 파전을 만들어 잔치도 했다. 일부는 유기농 레스토랑에 팔았고 식당의 음식쓰레기는 다시 텃밭의 거름으로 썼다.
물론 이 과정이 손 쉬웠던 건 아니다. 당초에는 다른 곳을 물색했지만 건물주의 변심으로 쫓겨난 것만 두 차례다. 철공소 물 값과 임대료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어렵사리 지금의 건물주를 설득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텃밭 가꾸기가 시작되자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던 철공소 사람들의 태도도 달라졌다. 비닐하우스와 가림막을 만드는 등 일손을 돕고 나서기도 했다. 이 덕분에 문래도시텃밭 공동체는 지난해 11월 열린 `제3회 시민참여 생활녹화 경진대회'에서 서울시로부터 대상을 받았다.
문래도시텃밭 공동체 기획에 참여한 이주연(26)씨는“북미나 유럽 등지에선 이미 도시농업이 활성화되어 있고 일본 도쿄에서는 벼농사를 하고 홍콩에서는 양봉도 한다”며 “도시농업에 대한 관심을 확산시키기 위해 옥상농부학교 프로그램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입학식에 참석한 주부 구재숙(43)씨는 “아이들에게 신선한 채소를 먹여주고 싶어 아파트 베란다에 텃밭을 가꿔봤지만 쉽지 않았다”며 “텃밭 노하우를 배워 아이들에게 텃밭 가꾸는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박철현기자 k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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