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는 지독한 운동광이다. 전매 특허인 삼보(러시아 격투기)와 유도는 물론이고 스키 배드민턴 사이클 낚시 스쿠버다이빙 아이스하키 등 못하는 운동이 없을 정도다.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극한의 환경도 즐긴다. 포뮬러원(F1) 경주에 참가해 시속 240km의 속도로 달리는가 하면, 수호이(Su)-27 전투기와 투폴레프(Tu)-160 초음속 폭격기를 직접 몰기도 한다. 세계에서 가장 수심이 깊다는 바이칼호를 잠수정을 타고 밑바닥인 수심 1,395m 지점까지 내려간 적도 있다. 심지어는 우리를 탈출한 호랑이를 마취총으로 쏜 뒤 이빨 치수를 재고, 북극곰에 위성추적 태그를 다는 '기행'도 마다하지 않는다. 아무리 국가보안위원회(KGB)에서 20년 가까이 단련된 몸이라 해도 올해 환갑인 나이를 생각하면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근육질의 상반신을 드러낸 채 시베리아의 차디찬 강물에서 수영과 낚시를 즐기는 모습을 카메라에 공개하는 것도 그런 마초 기질 때문일 것이다. 이런 걸 보고 있으면 그에게서 무서운 집착 같은 걸 느낄 때가 많다. 다른 국가 지도자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이미지다.
운동을 좋아해서인지 그는 국제스포츠 행사를 주최하는 것에도 대단한 승부욕을 발휘한다. 2014년 동계올림픽을 소치에 유치하기 위해 직접 발표장소인 과테말라까지 날아가 경쟁 도시였던 평창에 패배를 안겼다. 러시아가 소련 시절을 포함해 동계올림픽을 유치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푸틴의 이런 모습에는 냉전시대 공산권을 호령했던 소비에트에 대한 향수가 짙게 배어있다. 스포츠에서만큼은 미국도 고전을 면치 못하는 러시아의 강인함에서 옛 소련의 영광을 되새기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그래서 푸틴의 발언에는 제국의 부활을 꾀하거나 미국에 대한 경쟁심을 암시하는 말들이 많다. 발트해의 라트비아가 1944년 소련에 빼앗긴 접경 지역을 되찾으려 하자 푸틴이 "죽은 당나귀 귀에나 대고 하라"고 독설을 퍼부은 것은 유명하다. 결국 라트비아는 2007년 푸틴의 러시아와 국경조약을 체결하면서 이 지역을 포기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푸틴은 영혼이 없다"고 하자 국가지도자는 차가운 이성으로 족하다면서 "국제관계는 감정이 아닌 국익에 따라 결정된다"고 맞받아치기도 했다.
2000년 1기 대통령에 취임해서 그가 가장 먼저 했던 것 중에 하나는 러시아 국가를 바꾼 것이었다. 당시 러시아 국가에는 음악만 있을 뿐 가사가 없었다. 푸틴은 여기에 이런 노랫말을 붙였다. '영광 있으라, 우리의 자유로운 조국과 형제민족으로 구성된 영원한 연맹이여. 선조들에게 물려받은 민족의 지혜여, 영광 있으라.'
이달 초 치러진 대선에서 승리한 푸틴은 세번째로 임기 6년의 대통령직에 올랐다. 전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유럽지향적이라면 푸틴은 아시아를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재집권은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에 거물급 플레이어가 한 명 더 등장했음을 의미한다. 미국이 아시아ㆍ태평양 국가의 일원임을 선언하면서 외교ㆍ군사적 자원을 아시아로 집중하고, 이에 맞서 중국은 주변국과 영토 분쟁도 서슴지 않으며 해양패권을 노골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아시아를 놓고 어느 때보다 첨예하게 부닥치는 시기에 제국의 향수를 갖고 있는 푸틴이 등장한 것은 우리로서는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니다. 푸틴의 친 중국 정서를 간파한 중국은 부정선거 논란에도 불구, 가장 먼저 당선 축하 전화를 하는 등 벌써부터 발 빠른 전략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푸틴은 5월 미국 시카고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 참석할 것이냐는 질문에 "(마피아 두목) 알 카포네가 살았던 곳"이라고 응수했다고 한다. 백악관은 나토 회의 직전 역시 시카고에서 개최하기로 했던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 장소를 워싱턴 인근에 있는 대통령 주말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로 부랴부랴 변경했다. 푸틴을 의식한 미국의 행보에서 푸틴의 러시아가 몰고 오는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
황유석 국제부 차장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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