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학기가 시작되면서 올해도 거의 모든 초중고등학교에서 학급 회장과 부회장을 뽑았다. 곧 있으면전교학생회장 선거도 시작된다. 전교학생회장 선거는 필요할 경우 선거관리위원회의 도움도 받을 수 있다. 명목은 이 제도가 청소년들에게 민주주의를 체험케 하는 것이기 때문이란다.
과연 그럴까. 전혀 그렇지 않다. 학급회장이나 학생회장이나 현재의 초중고등학교에서 갖고 있는 자율성이란 없다. 학생회장이 하는 것은 교사와 학교의 온갖 잔심부름이 대부분이다. 학급회장이나 학생회장에게는 교사의 일을 보조하는 역할을 맡기는 대신 학교에서는 학생기록부에 좋은 평가를 해주는 것으로 보답을 한다. 회장 경력은 입학사정관제도니 수시모집이니 해서 성적 외의 것이 입학에 영향을 미치는 대학 입학제도 안에서 커다란 장점이 된다. 심지어 국회의원이 되려는 데에도 한몫을 한다.
학생회장이 되기 위해 후보들은 여러 가지 공약을 내세우지만 실상 이뤄지는 것은 거의 없다. 학생회 자율로 바뀔 수 있는 학교의 규칙이라는 것이 현실에서 거의 없기 때문이다. 때로는 회장의 학부모까지 나서서 학교의 여러 가지 역할을 맡고 그 때문에 회장 입후보 자격 자체가 제한 받기도 하니까 학생자율이 아니라 자율을 훼손하는 데 더 기여한다.
학생회장제도는 민주주의로 보이는 척하는 유사민주주의일 뿐이며 유사민주주의는 진짜 민주주의를 방해하는 적이다. 그런데도 이런 제도가 없어지지 않는 것은 왜일까. 기본적으로 학생을 교육의 대상이 아니라 '관리'대상으로 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 사회 전체가 진짜 민주주의가 뭔지를 모르는 것과도 상관 있다.
최근 들어 소셜네트워크의 바람을 타고 정당마다 모바일선거인단을 만들어서 공천에 활용하고 있는데 이것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유사민주주의일 뿐이다.
공천이란 그 정당의 정체성에 맞는 후보를 고르는 작업이다. 그런데 정당의 정체성과 아무 상관없는 시민들의 의사를 반영한다는 것은 인기영합이지 민주적인 정당후보 선출방법이 아니다. 민주주의란 권리 뿐 아니라 책임이 병행되는 행위이다. 정당이 정당회비를 내는 정당원으로 구성되고 그들이 자율적으로 후보를 뽑는 데에서 민주적인 절차는 시작되는데 정당원도 아닌 이들이 정당후보를 공천하는 데 관여하는 게 민주주의와 무슨 상관일까. 이런 제도가 용인되는 것은 대형정당일수록 정당원이 당비를 내는 게 아니라 활동비를 되려 받는 한국의 비정상적인 정당체계와 상관이 있다. 어차피 정당원도 책임이 없으니 외부의 시민과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책임은 없고 역할만 있고 정당의 정체성은 없고 관리하는 비용만이 좌우하는 유사민주주의가 한국을 지배한다.
어차피 대형정당의 사정은 다 비슷하니 인기투표라도 하겠다고 한다면 이해는 하겠는데 문제는 이 모바일 투표라는 것이 국회의원 단위에서는 시민의견을 반영하지도 못한다. 유권자가 800만이 넘어서는 서울시장과 달리 유권자 8만~24만(인구 10만~30만명)인 국회의원 후보 공천의 경우 후보자가 열성적인 모바일 조직을 꾸려서 여론을 뒤집는 것은 매우 쉽다. 실제로 이런 일이 민주당 경선 지역 여러 곳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당 지도부는 민심의 반영인 양 모른 채 하고 있다. 더구나 어떤 지역에서는 경선을 했다가 어떤 지역에서는 안했다가 당지도부 마음대로 의중에 있는 사람을 끼워넣기 위해 원칙도 없이 왔다 갔다 하면서 모바일선거인단을 방패삼아 대단한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줄 착각하고 있다. 이 때문에 차라리 한나라당의 공천이 문제인물을 솎아내고 여론을 반영한다는 소리까지 나오는 게 세상인심이다.
부정부패, 4대강과 같은 무리한 정책과 예산남용, 민간인 불법사찰 증거인멸 등 이 정부의 문제는 심각하다. 정권 심판은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뭔지도 모르는 정당한테 무조건 표를 줄만큼 세상이 녹록하지 않다.
서화숙 선임기자 hssu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