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A씨는 2010년 7월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갤럭시S’를 75만원에 구입했다. “신제품 홍보 차원에서 삼성전자와 SK텔레콤이 보조금을 대폭 지원해 출고가(94만9,000원)보다 20만원이나 싸다”는 대리점 직원의 말에 넘어간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휴대폰 제조사와 이동통신사의 교활한 상술이 숨어 있다. A씨는 정상가보다 20% 이상 싸게 구입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정상가보다 8만원 이상 비싸게 산 것이다.
속임수 가격구조는 이렇다. 제조사가 통신사에 공급하는 갤럭시S의 가격은 62만9,000원. 가입자 유치가 관건인 통신사 입장에선 보조금을 한 푼도 주지 않고 제조사 공급가에 물류비용(통상 4만원)을 붙여 팔아도 66만9,000원만 받으면 된다. 그런데 제조사 공급가보다 32만원이나 가격을 부풀린 뒤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처럼 속여 정상가보다 8만원이나 비싸게 휴대폰을 팔았다.
SK텔레콤이 출고가를 부풀린 이유는 일석삼조(一石三鳥)의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유통마진으로 11만원을 챙기게 된다. 또 휴대폰 가격을 “많이 깎아준다”는 조건으로 소비자들을 더 비싼 요금제에 가입하도록 유인할 수 있다. 휴대폰 가격이 비싼 만큼 할부금 잔여대금이 많아져 소비자가 통신사를 쉽게 바꾸지 못하는 ‘고착(lock-in) 효과’는 덤이다.
15일 ‘부당 고객유인행위’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된 SK텔레콤(과징금 202억5,000만원)과 KT(51억4,000만원), LG유플러스(29억8,000만원) 등 이동통신 3사는 2008~2010년 44개 휴대폰 모델에 대해 출고가를 평균 22만5,000원 부풀렸다. 제조사 입장에선 통신사가 출고가를 부풀린다고 해서 제품 가격을 더 받는 것은 아니지만, ‘가격이 비싼 만큼 기능도 많은 고급제품’이라는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제조사들은 통신사에 출고가 부풀리기를 제안하기도 했다.
반대로 제조사가 공급가를 부풀리는 경우도 있었다. 효과는 출고가 부풀리기와 비슷하다. 제조사들은 2008~2010년 209개 휴대폰 모델의 공급가를 평균 23만4,000원 부풀렸다. 특이하게도 이 기간 공급가 부풀리기와 출고가 부풀리기가 중복 적용된 품목은 단 한 개도 없었다. 통신사와 제조사의 협의가 매우 긴밀하게 이뤄졌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들 회사가 가격 부풀리기에 혈안이 된 이유는 2008년 이후 방송통신위원회의 보조금 규제가 폐지되고, 아이폰 등 외국산 휴대폰 진입이 본격화하면서 통신사는 물론 제조사 간 경쟁도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보조금 많은 휴대폰이 소비자 유인효과가 크다는 점을 이용해 휴대폰 가격을 부풀려 마련한 보조금으로 생색을 낸 것이다.
SK텔레콤 관계자는 “휴대폰 보조금은 판촉활동의 일부이고 방송통신위원회도 보조금 가이드라인을 통해 27만원 이내에서 허용하고 있는데, 이를 무조건 가격 부풀리기로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다른 상품의 판촉비는 문제삼지 않으면서 왜 휴대폰만 문제 삼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삼성전자도 “가격을 부풀리거나 부당하게 고객을 유인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특히 통신사들은 정부의 이중규제를 문제삼고 있다. 이통사 관계자는 “방통위에서 보조금 과다 지급으로 제재를 가한 상황에서 공정위가 또 다시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은 명백한 이중규제”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방통위가 말하는 보조금은 이동통신사가 자기 수익에서 나온 재원으로 지급했을 때 성립하는 문제이고, 공정위가 문제 삼은 보조금은 가격을 부풀려 지급한 것이므로 성격이 전혀 다르다”고 일축했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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