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9일 고리원자력발전소 1호기에서 발생한 전원 중단사고 수습 직후 발전소장을 비롯한 간부들이 회의를 열어 은폐를 모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발전소 측은 우연히 사고 소식을 접한 부산시의원이 문의를 한 뒤에도 사흘이 지나서야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한수원 차원의 은폐에 대해서도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고리 1호기 관계자는 14일 "지난달 9일 사고 수습 직후인 오후 9시에서 9시30분 사이 발전소장과 실장, 팀장 등 간부들이 현장에서 논의, 이번 사고를 보고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1주년을 앞둔 시점에서 노후 원전인 고리1호기의 사고 사실이 알려졌을 때 미칠 엄청난 사회적 파장이 부담이 돼 그런 결정을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한수원 측이 13일 "사고 당시 경황이 없어 미처 보고할 시기를 놓친 것 같다"고 해명한 것이 거짓이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이들은 원전 운전일지에도 1호기가 정상 가동됐다고 기록했다. 고리 원전에는 원자력안전위원회(안전위)에서 파견한 주재관 1명과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의 주재원 4명이 상주하고 있으나, 이들이 퇴근한 뒤 사고가 일어나 까맣게 몰랐다. 김윤일 KINS 가동안전총괄실 주재원은 "주재원들이 퇴근한 뒤라도 전화로 알렸어야 하는데 보고를 전혀 받지 못했고, 다음날 확인한 운전일지에도 정상 운영됐다고 적혀 있었다"고 말했다.
발전소 측의 조직적인 은폐로 영영 묻힐 뻔했던 사고는 부산시의회 김수근 의원(기장2)이 우연히 사고 소식을 접하고 문의하는 과정에서 뒤늦게 보고됐다. 김 의원은 "지난달 20일쯤 한 식당에서 옆 테이블에 있던 손님들이 '고리1호기에서 사고가 났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뜬소문으로만 여기다 이달 8일 고리원자력본부를 방문해 문의했으나 대외협력처장으로부터 "모르겠다. 확인해보겠다"는 답변만 들었다고 밝혔다.
한수원에 따르면 김종신 사장은 10일에야 새로 부임한 고리본부장으로부터 전화로 보고를 받았으며 11일 상경한 본부장과 소장 등을 만나 상세보고를 받았다. 그러나 한수원 측은 첫 보고를 받은 이틀 뒤인 12일에야 안전위에 이 같은 사실을 알렸다. 한수원 측은 "당시 주말이어서 보고가 늦어졌다"고 해명했으나, 김 의원의 문의 이후 안전위에 최종 보고가 이뤄지기까지 무려 나흘이 걸린 것을 두고 또 다른 은폐시도 의혹이 일고 있다.
한편 감사원은 이날 지난해 9월 정전대란에 이어 발생한 고리 원전 사고 은폐 등과 관련해 원전안전, 에너지 분야 등 국가핵심기반분야 위기관리실태 전반에 대해 이달 중 실지감사를 벌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고리원전 1호기=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원전으로 1978년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2007년 6월 설계수명 만료로 가동을 멈췄다가 2008년 1월 정부가 10년간 재가동을 승인해 다시 운영하고 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강성명기자 sm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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