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나온 대학을 아들도 나왔다고 주변에서 부러워하는데, 사실 부담스럽습니다."
아버지가 누볐던 대학 캠퍼스를 30년 이상의 시차를 두고 아들이 이어 밟는 건 4년제 일반 대학에선 왕왕 목격된다. 하지만 경찰대에서는 이런 일이전무했는데, 개교 31년만인 올해 처음 부자(父子) 졸업생이 나왔다. 14일 경기 용인에 있는 경찰대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새 기록이 세워진 것이다.
이날 임관한 김준호(24ㆍ27기) 경위와 김재석(51ㆍ1기) 광주경찰청 생활안전과장 부자가 주인공이다.
김 과장은 "요즘처럼 '자식농사'힘들고, 세대차로 부자지간에 갈등 없는 집이 없을 정도인데 아들을 '동문'에 이어'직장 동료'로 맞았고, 경찰대 역사에 남을 타이틀까지 거머쥐었다"며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아버지로 불러야 할지, 김 과장님으로 불러야 할지 난감해지기 시작했다"는 아들 김 경위도 싱글벙글이기는 마찬가지. 어머니 최순천(49)씨는 "부자가 너무 친해서 소외 당하는 느낌이었는데 이젠 본격적으로 '왕따'신세가 됐다"며 "대학생 딸과 함께 네 식구가 두 편으로 나뉘게 됐다"며 너스레를 놓았다.
경찰대 동문에 같은 경찰 제복을 입게 된 김씨 부자가 처음부터 부자의 정이 썩 돈독했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아버지 직장을 따라 전남 보성, 목포, 해남, 서울, 경남 창원, 다시 서울, 광주 등으로 옮겨 다닌 것도 불만이었지만 잦은 야근 탓에 같이 놀거나 얼굴 맞댈 시간이 많지 않은 탓이다. 김 경위는 "어릴 때 아버지가 경찰인 게 싫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성격도 내성적이었다.
그러나 김 경위가 "아버지와는 다른 길을 가겠다"며 동시 합격한 한의대를 포기하고 경찰대를 택하면서 분위기는 반전했다. 한의대는 어머니 뜻에 따라 지원한 곳이었다. 김 과장은 "아들이랑 동문이 되고 보니 많은 부분에서 공감대가 형성돼 대화시간이 10배는 늘더라"며 "아내가 샘을 다 낼 정도였다"고 했다. 김 경위는 "가족에겐 소홀해도 나라를 위해 일하는 모습이 같은 남자로서 멋져 보였다"며 "어머니에 대한 마음의 빚은 차차 갚아가겠다"고 했다.
경찰대 사상 첫 부자 동문이라는 수식어가 의미하듯 김 과장은 아들의 든든한 멘토 역할을 톡톡히 했다. 김 경위는 "기숙사 생활에서부터 학과 선택, 무도 종목(검도)을 선정할때도 아버지 조언을 구했다"고 털어놓았다. "졸업 성적(법학과 3등)도 따지고보면 아버지 작품입니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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