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님, 시금치나물이랑 계란말이 500원어치씩 주세요. 또 뭐 맛있는 거 없어요?"
"동태전이 막 해서 따끈따끈해. 먹어봐요."
14일 점심시간 청와대 옆 서울 종로구 통인동 통인시장. 반찬가게인 '시골반찬' 주인 김희정(65)씨가 손님 이지은(31)씨의 빈 도시락에 시금치나물과 계란말이를 듬뿍 담고 동태전 하나를 슬쩍 올려준다. 돈 대신 500원짜리 쿠폰 두 장을 낸 이씨는 떡집 '부여방앗간'으로 향하더니 남은 쿠폰으로 후식용 경단을 샀다. 도시락을 든 이씨가 분식집과 과일가게, 생선가게를 지나 도착한 곳은 시장 중간에 있는 통인시장 고객만족센터 건물 2층 '도시락카페 통'. 이씨는 이곳에 비치된 압력밥솥과 보온병에서 밥과 국을 푼 뒤 도시락과 함께 식사를 시작했다.
통인시장 상인회가 운영하는 마을기업인 통인커뮤니티가 올 1월 문을 연 도시락카페 통은 이를테면 '시장 뷔페'다. 손님이 이곳에서 쿠폰을 산 뒤 빈 도시락을 들고 시장 곳곳 14개 반찬가게, 분식집, 떡집 등을 돌며 원하는 음식을 골라 담아 오는 방식. 시장 구경도 하고 시장 음식으로 식사를 하려는 주변 직장인, 주민, 관광객들로 점심 때마다 20여 좌석이 꽉 찬다.
시장 근처 금융감독원 연수원에서 일하는 이동혁(60)씨는 "남자 두 명이 아무리 배불리 먹어도 밥값이 1만원을 넘지 않아 일주일째 매일 오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의 반찬 가격은 다양한 종류의 나물과 잡채 장조림 계란말이 등이 한 줌에 500원, 제육볶음 두 줌이나 돈까스 한 토막은 2,000원 정도다. 떡볶이, 순대, 어묵도 500원어치씩 판다. 여기에 카페에서 2,000원에 판매하는 밥, 국, 김치를 더하면 총 4,000~5,000원 정도에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다.
자주 시장을 둘러본다는 대학생 김정주(23)씨는 "시장에서 도시락을 만들어 먹으니 그냥 구경만 할 때보다 더 재미있다"며 "아주머니들이 반찬을 넉넉하게 얹어주는 게 시장 인심인 것 같다"고 말했다.
시장뷔페 아이디어는 대기업 근무시절 해외 재래시장을 많이 다녀본 정흥우 통인시장 상인회장이 냈다. 노점 음식을 조금씩 맛볼 수 있는 뷔페형으로 만들면 관광객이나 시장손님들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고 시장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정 회장은 "상인들도 괜찮은 아이디어라며 호응을 해줘 성사가 됐다"며 "통인시장은 다른 시장보다 반찬가게가 많아 외국인, 관광객들은 찾을 일이 많지 않았는데 이제는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통인시장에서는 이외에도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빈 가게를 활용한 전시장 '꿈보다해몽공작소', 상인들이 직접 가게에 필요한 소품을 만들고 주민들과 함께 목공기술을 배우는 '내맘대로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다음달부터는 중고 물건을 매매ㆍ교환하는 벼룩시장과 지역 노인들을 위한 한글교실 등도 열 계획이다. 정 회장은 "경기가 침체되면서 삭막해졌던 시장이 이런 프로그램 덕분에 활기를 되찾고 있다. 상인들이 자긍심을 갖는 게 큰 결실"이라고 말했다.
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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