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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大추방의 시대가 다시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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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大추방의 시대가 다시 오는가

입력
2012.03.1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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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중세 부자들에게는 큰 근심이 하나 있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더 힘들다는 성서의 말씀 때문이었다. 죽어서 지옥에 가고 싶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더구나 현세에서의 부와 영화를 죽어서도 영원히 누리고 싶던 그들이었다. 이들의 고민에 교회가 해결책을 제시하였다. 자선이었다. 비록 당신의 부귀영화는 지옥으로 가는 특급행 열차 표이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풀라고 교회는 가르쳤다. 이 가르침은 부자들에게는 가뭄의 단비였다. 그래서 중세의 부자들은 길을 가다가 구걸하는 사람을 만나거나 거지가 자신의 영지로 들어오면 ‘예수를 만난 것처럼’ 기뻐하며 환대하기도 했다고 한다. ‘거지’는 자신들이 천국으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은인과 같은 존재였던 셈이다.

구걸하는 사람의 위상이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진 것은 중세가 몰락하고 근대가 시작되면서부터였다. 자본주의가 태동되면서 부를 축적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것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거지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노동력의 완벽한 낭비였다. 더구나 떠돌아다니면서 대충 먹고 지내는 거지의 존재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고되게 노동하여 삶을 이어가려고 하기 보다는 여차하면 사람들이 일을 때려치우고 거지가 되려고 했기 때문이다. 거지만도 골치 아픈데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유랑과 구걸을 금지하기 위한 온갖 법안이 마련되었다. 이미 14세기부터 부랑과 걸식을 금지시켰고 노동력의 이동에도 제한을 가했다. 노동력이 이동하면 임금이 상승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걸인들은 감금되거나 귀나 코를 절단하기도 했고 노예선으로 보내버리고 했다. ‘면허’를 받은 걸인들만 구걸을 할 수 있고 나머지들에게는 가혹한 처벌을 가하는 법률을 제정하기도 했다. 면허가 없는 거지가 구걸을 하다 적발되거나 자기가 면허 받은 지역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떠돌다 체포되면 가혹하게 처벌했다. 걸인들은 교정원이나 작업장으로 보내 강제노역을 시켰다. 이 당시의 빈민법이 빈민을 구제하기 위한 법이 아닌 것은 명확하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노동윤리를 전면화하기 위한 방책이었다. 국가의 가장 중요한 일이 노동력을 확보하고 재생산하여 부를 창출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추방에서 감금의 시대로의 전환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 다시 근본적인 변화가 있는가보다. 노동력을 재생산하기 위해 추방하던 사람들을 감금하여 착취하고 교화하던 권력이 다시 ‘추방’쪽으로 돌아섰다. 이것을 아주 잘 보여주는 것이 지난달 28일에 한국 국회에서 통과된 경범죄처벌법이다. 이 법률에 따르면 공공장소에서 다른 사람의 통행을 방해하거나 귀찮게 하는 구걸 행위를 하면 10만원이하의 과태료나 구류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지난해 8월 서울역에서 노숙자들을 강제 퇴거시킨 것에 연이은 조치로 보인다.

구걸을 금지하고 이들을 사회로부터 추방시켜버리는 법률이 ‘너도 나도 복지’를 외치는 이 시대에 국회에서 통과되었다는 것은 아무래도 의미심장하다. 이들이 이런 조치와 법률을 제정하는 이유는 보행자들의 안전과 도시 미관 때문일 것이다. 이 조치들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사례들을 보더라도 지금 국가관리와 도시행정에서 가장 우선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세금을 내는 자들의 ‘안전’과 관광객들을 위한 도시 ‘미관’이다. 이미 영국의 사회학자 바우만은 국가의 존재 이유가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안전’을 제공하기 위해 ‘쓰레기’를 추방하는 것으로 돌아섰다고 말해왔다. 다른 한편 도시는 점점 더 주민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관광객들을 유혹하기 위한 ‘구경거리’로 탈바꿈했다. 도시의 ‘심미화’야말로 전세계 모든 도시들의 화두가 된지 오래다. 그러니 해결방법은 간단하다. 걸인과 노숙자를 이들의 눈앞에서 치워버려 세금내는 사람과 관광객들의 눈을 만족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돌고돌아 다시 대추방의 시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엄기호ㆍ교육공동체 벗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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