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원전에서 사고로 전원이 완전히 끊긴 아찔한 상황이 벌어졌다. 원자력안전위원회에 따르면 부산 기장군 고리원전 1호기에서 지난달 9일 오후 8시34분부터 12분간 ‘완전 정전(Black out)’이 발생했다. 더 놀라운 건 원전 운영자인 한국수력원자력이 사고 당시 상황을 아무데도 보고하지 않고 은폐했다는 사실이다. 현장에서 어물쩍 넘기려다 가공할 재앙이 빚어졌을 수도 있었던 만큼 국가 안보공백에 준하는 사태였던 셈이다.
원전 완전 정전은 지난해 일본 후쿠시마 원전처럼 냉각수 순환 정지로 핵연료봉이 녹아 내리는 초대형 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지진ㆍ해일 같은 천재지변에도 전력 공급은 끊이지 않아야 한다. 이를 위해 고리 1호기에도 외부 전원 2개 라인, 비상 디젤발전기 2대, 예비 비상 디젤발전기 1대 등 2중, 3중의 예비 전원을 갖췄다. 하지만 예비 전원은 전혀 작동하지 못했다. 외부 전원과 연결된 전선 1개 라인은 정비를 위해 끊어 놓았고, 다른 1개 라인은 정비원 실수로 차단기가 내려가 끊어진 상태였다. 이런 상황이면 자동으로 즉시 가동돼야 하는 비상 발전기도 먹통이 됐다.
물론 대지진에 따른 쓰나미로 원전에 온통 물이 차 모든 예비 전원이 복구 불능 상태에 빠졌던 후쿠시마 원전 때의 상황과는 크게 다르다. 이번엔 어떤 식으로든 외부 전력 공급이 가능했고, 수동으로 예비 비상 발전기도 가동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애초의 정전 사태와 비상 발전기의 먹통 상태, 상황 은폐 및 보고 지연 등에 대한 책임이 감해질 수는 없다.
장기 정전에 따른 후쿠시마 원전의 폭발 및 연료봉 노출 사고는 일본 국토의 3%를 방사능 오염지역으로 초토화시켰다. 가공할 재앙을 보고 국내에서도 원전 반대 여론이 높아지자 정부는 지난해 3월 전국 21개 원전에 대한 안전점검과 함께 한 차원 높은 안전기준을 마련하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이번 사고로 원전 안전성에 대한 신뢰는 크게 타격을 입게 됐다.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한 조사와 엄중한 문책이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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