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사망을 계기로 남북관계 복원을 기대했지만 쉽지 않은 것 같다. 권력기반이 취약한 김정은 체제가 출범하면서 곧바로 조문 문제를 거론하며 ‘이명박 역적패당과는 영원히 상종하지 않을 것’이라고 먼저 선을 그었다. 최근에는 군부대에서의 북한지도자와 관련한 전투구호를 문제 삼으면서 대남비난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북한은 과거에도 남측에서의 군사훈련 기간에는 더 과민하게 반응해왔다. 특히 최고지도자와 관련한 문제에 대해서는 극도의 과민반응을 보였다. 북한지도자의 사진을 표적지로 사용하거나 지도자를 비난하는 대북전단을 날려 보낼 때 “최고존엄의 권위를 훼손했다”고 하면서 강하게 반발했다.
남측 군부대에서의 북한 지도자와 관련한 전투구호에 대한 북한의 반응은 마치 벌집을 쑤셔놓은 듯하다. 새 지도자에 충성경쟁을 하듯이 북한의 거의 모든 기관과 매체들이 나서 연일 입에 담기 어려운 험한 말들을 동원해서 남측 지도자를 비난하고 있다. 북한은 ‘보복성전’을 거론하며 남측 당국에 대한 증오심과 복수심을 고양시키고 있다. 남북관계만 두고 보면 냉전시대로 되돌아간 듯하다.
냉전시대 남북관계를 설명할 때 자주 사용했던 개념이 ‘적대적 의존관계’이다. 적대적 의존관계는 남북한의 지도자들이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고 적의 위협으로부터 체제와 정권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권력을 강화하고 장기집권을 꾀했다는 것에서 유래한 분석개념이다. 적대적 의존관계는 남북관계를 통치력 강화에 이용하는 권위주의 지도자들의 전통적인 통치수법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개념이다. 남북화해가 진전되면서 적대적 의존관계란 말의 사용 빈도가 줄었다. 특히 남한에서의 민주화 진전은 남북관계를 통치에 활용할 수요를 줄여놓았다.
3대세습의 유일체제를 운영하는 북한의 경우 식량난 등 산적한 국내문제를 외부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습성화돼있다. 최근 북한이 대남비난을 강화하는 것도 적대적 의존관계를 활용하여 대남 적개심을 높이고 이를 김정은 체제결속과 권력공고화에 이용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먹는 문제도 해결하기 어려운 북한이 지금까지 유지되는 데는 미국, 일본, 남한 등 외부의 적이 있기 때문이다. 외부 적이 있는 사회가 내부 문제로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북한이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북한이 외부세계와 적대관계를 유지함으로써 경제적으로는 매우 궁핍하지만 정치적으로는 3대 세습까지 이어지는 유일체제를 구축할 수 있었다.
외부의 적들과 한꺼번에 화해할 경우 체제와 정권이 흔들릴 수 있어 북한은 ‘통미봉남’ 전술을 활용하기도 한다.
최근 남북 갈등이 심화되는 데 비해 북한과 미국은 적대관계 해소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김일성 사후 북미 제네바 합의가 이뤄진 것과 같이 김정일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미국은 3차 고위급 회담에서 핵 활동의 임시중지와 식량지원에 합의했다.
김정일 시대가 마감한 것을 계기로 남북 사이에 정치적 화해를 이룰 전기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오히려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임기 말에 이르기까지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 설정 자체를 하지 못하고 있다. 군사훈련을 지속하는 가운데 총선을 앞두고 남북관계를 복원한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악화되지 않도록 관리할 필요가 있다. 연평도 포격으로 G20 정상회의 성과가 하루아침에 사라진 경험을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곧 있을 핵안보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북한문제를 잘 관리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맹동주의자들이 충성경쟁 차원에서 대남무리수를 쓸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를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 무엇보다 권력승계의 과도기에 처한 북한을 쓸데없이 자극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특히 북한체제의 특성을 감안해서 지도자문제를 건드리는 것은 피해야 할 것이다.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피하는 것이 전략적이기 때문이다.
고유환ㆍ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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