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와 프로배구를 휩쓸고 지나간 승부조작 사건 수사가 “경기 특성상 승부조작은 어렵다”는 평가를 받았던 프로야구까지 뻗어 나가 두 명 투수의 혐의를 밝혀냈다. 승패에 영향을 미친 조작이 아니란 점에서 검찰은 ‘경기조작’이란 새로운 용어를 사용했고, 우려와 달리 다른 이가 연루된 정황이 드러나지 않아 수사 자체는 종료되는 분위기다. 이렇게 수사가 종료되는 시점에서 혐의를 인정한 두 투수에 대한 처분에도 관심이 쏠린다. KBO는 두 선수의 야구활동을 정지시킨 상태이며 형사처벌이 확정되면 상벌위원회를 열어 징계수위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라 한다.
그런데 팬덤 일각에서 영구제명이 지나치게 심한 처분이 아니냐는 여론이 있다. 몇몇 스포츠 담당 기자들도 그런 여론에 찬동한다. 그들이 내세우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먼저 그들이 승부조작을 통해 실제로 돈을 챙기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보도에 따르면 김성현은 두 번째 경기조작에 실패하면서 첫 번째 사례금도 돌려주었고, 그 다음부터는 손해를 변상하란 브로커들의 빚 독촉에 시달렸다 한다. 박현준은 그 상황을 보고 경기조작에 가담하였고 사례금은 김성현 아버지의 수술비와 약값에 보태거나 김성현의 빚을 줄이는데 썼다고 한다. 또 야구 밖에 모르는 그들을 야구장 밖으로 내몰면 조직폭력배 등 진짜 범죄의 길로 빠질 수 있다는 지적도 선처의 근거로 활용된다.
그러나 ‘선처’는 법정에서 형량을 결정할 때 요구할 일이지 영구제명 문제와는 해당사항이 없다. 스포츠가 주는 낭만과 감동은 그것이 공정하단 ‘환상’에 기댄다. 따라서 그 환상을 치명적으로 깨는 승부조작을 배제하지 않고선 리그의 운영 자체가 불가능하다. 놀라운 플레이나 믿기 어려운 역전상황이 벌어졌을 때 입을 벌리며 경탄하는 것이 아니라 “이거 혹시 조작 아닌가?”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면 어쩔 것인가. 프로스포츠가 출범한 이래 승부조작에 관한 시비가 완전히 사라진 적은 없었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라도 승부조작이 발견되면 프로의 세계에서 반드시 도려내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세심하게 정황을 따져본다면 그 선수들만 억울했을 것인가. 몇 년 전에 터진 e스포츠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된 게이머들 중에선, 무슨 경기조작을 한 게 아니라 그냥 자기가 이기는 쪽에 베팅하고 열심히 게임을 했던 이도 있었다. 하지만 프로선수라면 베팅에 끼었단 사실 자체가 잘못이 되고 제명대상이 될 수 있다. 지금 알려진 정황 정도로 두 투수 중 하나라도 영구제명을 면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다른 선수들의 상황과 비교해 볼 때 형평성에 맞지 않다.
“평생 야구만 한 이에게 다른 선택지가 어디 있나”라는 반문도 아주 마음에 와닿는 소리는 아니다. 분명히 일리는 있지만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운동선수라는 직함을 달고 있는 청소년은 14만명 정도로 알려져 있는데, 그들 중에 고작 1% 정도가 직업 운동선수가 되는데 성공한다. 한국에서 운동선수의 길을 간다는 건 다른 것을 준비하지 못하는 ‘올인’의 길이기에, 이탈하는 99%의 처지는 참혹하다. 대학이나 프로팀의 지명을 받기 위해 무리하게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거나, 체중 조절 때문에 먹지 않고 운동하여 몸을 망치는 이들도 있다. 두 선수는 아마도 재능과 노력에 의해 다른 99%와 구별되는 1%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다른 99% 이탈자의 길에 재합류하는 것일 뿐이다. 운동이탈자들의 삶의 문제는 분명히 사회문제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개선이 논의해야 하지만, 승부조작을 했던 선수 몇 명을 계속 리그에 남겨둔다고 해결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3년 안에 국가대표가 될 선수’, ‘10년간 팀의 에이스가 될 수 있었던 선수’의 몰락은 처량하다. 그러나 그들을 영구제명하지 않으면 프로야구는 성립할 수 없다. 경기조작은 승패조작과는 다르다며 가볍게 보는 시각도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정의는 법원이 실현할 것이고, 스포츠는 팬들을 위해 자신의 가치를 보존해야만 한다.
한윤형ㆍ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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